'0'년차 뉴스 스타트업, 4년차 Grid News 삼킨 배경과 이유

5월 출범을 앞두고 있는 미국 미디어 스타트업 더 메신저(The Messenger)가 2021년 창업한 미디어 스타트업 그리드 뉴스(Grid News)를 전격 인수했습니다. 0년차에 불과한 미디어 스타트업이 설립 만 3년을 코 앞에 둔 미디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독특한 사례가 이번에 일어난 것이죠. 미국 뉴스 미디어 시장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JAF 커뮤니케이션즈가 소유한 '더 메신저'는 아직 출범조차 하지 않은 신생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입니다. 오는 5월 창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175명의 기자를 확보한 뒤 출범하기 위해 유망한 기자들을 계속 영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고커 미디어 출신의 니잔 짐머만(Neetzan Zimmerman), 피플 매거진의 편집장 댄 워커포드(Dan Wakeford)도 이 미디어에 합류한 상태입니다.

이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의 창업자는 올해 74세의 지미 핀켈스타인(Jimmy Finkelstein)입니다. 워싱턴 정치 전문 미디어 더힐을 1.3억 달러에 매각한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부유한 미디어 사업가 중 한 명이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합니다. 미국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해온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가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2021년부터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최근 5000만 달러(우리 돈 6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 중에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모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의 포부는 편향 없는 뉴스입니다. 더 메신저의 미션을 볼까요?

"메신저는 뉴스를 형성하거나 변경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 정확성, 균형성, 객관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신뢰를 얻고 미디어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미션을 두고 핀켈스타인을 잘 아는 이들은 약간의 조롱을 섞기도 합니다. 그의 이력을 봤을 때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평가인 것이죠. 일단 이 건은 여기서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2024년까지 1억 달러를 매출을 올릴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스폰서드 광고, 프로그래머틱 광고, 각종 이벤트 등을 수익원으로 삼아서 말이죠. 상당히 야심찬 계획이라는 건 이해하실 겁니다. 그리고 머지 않은 시간 안에 뉴스룸 규모를 550명까지 확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LA Times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이번 그리드 뉴스 인수도 이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드 뉴스 어떤 미디어 스타트업?

그리드 뉴스도 출범 당시에 상당한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마포(2500만 달러)에 비하면 조금 적은 수준이지만 무려 1000만 달러를 유치하면 출범했기에 그렇습니다.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의 전례를 봤을 때 이 정도 규모의 초기자금 유치(시리즈 A)는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미국이라서 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펀딩에 참여한 기업은 2곳입니다. UAE 투자자본인 IMI(International Media Investment)과 테크 기업가 Brian Edelman입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출신의 마크 바우만(Mark Bauman), 복스닷컴 출신의 로라 맥간이 공동 창업을 주도하고 이들로부터 자금 수혈을 완성했죠. 워싱턴 정치 보도를 중심으로 삼고 있었기에 뒤의 투자자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행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드 뉴스는 제가 360이라는 뉴스 포맷으로 자주 소개한 미디어 스타트업입니다. '그림을 가득 채워주다'(Fuller Picture)라는 표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하나의 사안을 여러 각도와 렌즈로 보도합니다. 하나의 사인이 지닌 다면적 성격을 분야 전문 기자들이 그들의 관점으로 분석하고 해설해주죠. 혁신적이고 모범적인 뉴스 포맷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사가 360 기사의 포맷을 띠지는 않습니다. 전세계 혹은 워싱턴이 주목하는 복합적인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 포맷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리드 뉴스는 아쉽게도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매출 측면에서도 독자 측면에서도요. 이들의 포맷과 접근법은 혁신적이었고 신선했지만, 그에 걸맞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공동 창업자인 마크 바우만이 책임을 지고 지난해 11월 사퇴를 했죠. 원래 그리드 뉴스의 계획은 첫해에 제품과 브랜드를 확립하고, 2년차에 기업으로서의 수익에 초점을 맞추고, 3년차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혁신적인 방법으로 비즈니스를 계속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구상과 계획대로 사업이 전개되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그러던 차에 더 메신저 쪽에서 인수 제안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능한 기자를 빠르게 확보해야 하는 과제, 그리고 편향 없는 미디어 구축의 숙제 등을 풀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였을 겁니다. 문제는 투자자 설득입니다. 1000만 달러라는 거금을 투입해 사실상 IMI와 에델만이 소유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리드 뉴스를 인수하려면 두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인수 금액을 던져야 합니다. 최소 1000만 달러 이상을 제안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거죠. 그렇다고 더 메신저 입장에서 5000만 달러의 1/5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그리드 뉴스 인수에 지불하는 건 부담스러운 선택입니다. 재력가인 핀켈스타인의 입장에서도 그랬을 겁니다.

과정은 밝혀진 게 없지만, 결론은 IMI가 JAF 커뮤니케이션즈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안이었습니다. 정확한 팩트는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다만 추정해 보면 이렇습니다. 투자금(1000만 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그리드 뉴스를 인수하되, IMI가 회수한 자금은 다시 더 메신저의 모회사인 JAF로 넣는 것이죠. 그리 되면 IMI는 작은 지분이라 하더라도 더 메신저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UAE 왕실과 연결된 IMI는 워싱턴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좋은 타협안인 것입니다. 다만, 핀켈스타인으로서는 자신이 소유한 JAF에 일부 지분을 열어줘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합니다. 물론 지분율이 높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국내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 산업에 주는 몇 가지 메시지

더 메신저의 그리드 뉴스 인수는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국내 미디어 스타트업 생태계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1) 전혀 다른 투자자의 성격 : 다른 자금을 주목해라

첫번째는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 투자자의 성격입니다. 일단 미국으로만 제한하면,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자금은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VC와는 달랐습니다. Puck.News부터 세마포, 더 메신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VC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이들은 나름의 목적을 지닌 대형 사모펀드(TPG Capital)이거나 부유한 재력가들(FTX의 샘 뱅크만 프리드)이었습니다. 그리드 뉴스에 투자한 IMI도 실리콘밸리 VC와는 거리가 먼 중동 자본입니다. 이는 기술 기반 투자에 익숙한 실리콘밸리 VC들이 뉴스 미디어 산업엔 관심이 크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대 가장 유망했던 Axios의 투자자만 하더라도, Lerer Hippeau Ventures, NBC News, Emerson Collective, Greycroft Partners 등 언론사이거나 언론에 관심이 높은 투자자들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VC와는 다른 특성을 보여주고 있죠.

국내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들도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히 이름이 알려진 국내 VC들은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에 관심이 높지 않습니다. 뉴스 미디어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VC보다는 오히려 관련 분야 재력가들에게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산가 중에 정치적 영향력에 관심이 있는 이들, 후견인의 성격으로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은 재력가 등이 후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2) 스타트업의 규모화 전략으로서 인수와 합병 : 인수합병에 유연해라

뉴스 미디어 스타트업은 특성상 규모를 빨리 확장하지 못하면 위기에 처할 확률인 높아집니다. 특히 광고를 주력 비즈니스 모델로 삼게 될 때, 규모의 확장 속도는 수익과 직결됩니다. 더 많은 수용자들에게 도달할 수 있어야만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얻게 되는 거죠. 미국 안에서 스타트업 간의 인수나 합병이 활발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빅테크 플랫폼과 대등한 협상 파워를 갖기 위해서라도 규모 확장은 필수적입니다.

국내에선 아직 이러한 흐름이 감지된 적은 많지 않습니다. 개별 독자 생존 유형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더 강력한 수익규모를 갖기 위해서라도 국내 미디어 스타트업 간의 인수나 합병은 장려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규모가 커졌을 때 광고 수익의 확대, 광고주의 유입이 더 쉬워질 수 있어서입니다. 높은 인지도와 규모 확장에 따른 영향력 증대는 광고 협상의 딜 파워를 키워 더 빠른 수익성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인수 합병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더 큰 자본이 움직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전통 언론사들이 미디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사례도 늘어날 필요도 있습니다. 미디어 재벌, 콕스 엔터프라이즈가 액시오스를 5억2500만 달러에, 악셀 스프링어가 폴리티코를 10억 달러에 인수한 것처럼 말이죠. 전통 언론사와 미디어 스타트업 간의 인수, 더 큰 자본의 관여에 따른 스타트업 간의 인수합병 등은 새로운 미디어 스타트업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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