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Slack) 인수협상과 시사점

슬랙 인수협상이 보여주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

최근 세일즈포스(Salesforce)가 슬랙(Slack)을 인수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이미 협상에 많은 진전이 있어서 빠르면 이번 주중에 인수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온 상태다. 업무용 커뮤니케이션/협업툴의 강자인 슬랙을 인수하게 되면 기업의 고객관리(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소프트웨어 업체로 세계 1위인 세일즈포스로서는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으나 갖지 못한 중요한 무기를 장착하게 되는 셈이다.

1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8조 원이 넘는 가치를 가진 슬랙을 인수하는 것은 대형 딜이고, 이런 대형 딜은 항상 시장 내의 경쟁구도를 크게 바꾼다. 그렇다면 세일즈포스가 슬랙을 인수하기로 한 결정 뒤에는 어떤 경쟁이 일어나고 있었을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선택

알다시피 마이크로소프트는 PC에 기반한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원조에 해당하는 기업이다. 하지만 개별 소프트웨어 판매방식을 고집하다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본격화된 클라우드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 서비스형 소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로 빠르게 진화하는 환경에서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빠르게 적응하는 업체들이 성장하면서 위기감을 갖게 된다. 세일즈포스가 그런 대표적인 기업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주력 제품과 직접 대결을 하지는 않지만, 마케팅과 고객관리 소프트웨어로 기업시장을 장악하면서 얼마든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세일즈포스를 인수하려고 했던 것이 5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세일즈포스도 긍정적이었지만 가격합의에 실패해서 딜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인수에 실패하면 바로 적수가 된다. 일 년 뒤인 2016년, 세일즈포스와 마이크로소프트는 비즈니스 인맥관리 서비스인 링크드인(LinkedIn)을 두고 인수경쟁을 벌였고, 세일즈포스는 이 싸움에서 패하면서 링크드인을 놓쳤다.

같은 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슬랙을 인수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80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던 슬랙을 인수하는 대신 (2009년에 인수한) 스카이프(Skype)의 기능을 발전시키고, 슬랙과 경쟁할 수 있는 팀즈(Teams)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잘한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성장 중인 슬랙을 경쟁자로 남겨두는 결과를 낳았다.

오라클의 실축

슬랙을 인수하려는 세일즈포스의 진짜 경쟁자는 사실 오라클(Oracle)이다. 두 기업은 고객관리 시스템 시장을 두고 정면으로 대결했다. 세일즈포스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베니오프는 오라클 출신으로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과 긴밀한 관계였다지만,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전사적자원관리) 시장을 두고 SAP와 경쟁하던 오라클이 시벨(Siebel)을 인수하면서 고객관리 시스템 시장에서 세일즈포스와 대결한 것.  하지만 오라클의 시벨과 달리 클라우드에 기반한 세일즈포스가 큰 인기를 끌면서 고객관리 시스템의 승자가 되었다.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이노프. 주간지 Time을 인수하기도 했다.

물론 오라클은 여전히 기업용 소프트웨어/서비스 시장에서 강자이고, 매출 등의 규모도 세일즈포스보다 훨씬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가총액에서 세일즈포스가 앞서는 데서 보듯 세일즈포스는 클라우드의 강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라클이 올해 뜬금없이 틱톡(TikTok)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배경에 바로 이런 사정이 있다. 클라우드의 강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틱톡 같은 서비스의 운영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이 그럴 시점이냐는 것이다. 벤처 투자자 션 아미라티(Sean Ammirati)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는 현재 사회적인 비판과 정치적인 부담이 큰 업종인데, 오라클처럼 그런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이 스스로 문제의 업종으로 찾아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연방 의회에 불려다니면서 중요한 기회비용을 잃게 된다는 것. 아미라티는 오라클이 제대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더라면 틱톡이 아니라 슬랙을 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한 것이 지난 10월 초였고, 틱톡을 두고 백악관이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동안 오라클의 경쟁자 세일즈포스는 슬랙과 협상을 진행한 것이다.

세일즈포스와 슬랙의 필요

세일즈포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업용 커뮤니케이션과 협업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미 중요한 고객관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을 상대로 기존 서비스와 잘 통합된 협업툴을 제공할 수 있다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에 “기업용 소셜 네트워크” 혹은 “협업 솔루션”이라는 채터(Chatter)를 선보였고 2016년에는 오피스 스위트(office suite)가 내재된 협업툴인 큅(Quip)을 내놓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던 참이었다.

마침 슬랙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올해 초 갑자기 찾아온 팬데믹으로 급격히 기업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온통 줌(Zoom)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조직들이 갑자기 화상회의를 도입하려니 결국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편한 솔루션을 찾게 되었는데 그게 줌 (Zoom)  이었다. 물론 슬랙도 화상회의 기능을 개발해두고 있었지만, 같은 회사조직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하게 되어있는 등 불편한 점이 많았다.

사람들이 줌으로 쏠리면서 슬랙이 허둥지둥하는 사이, 마이크로소프트가 팀즈(Teams)를 내놓으면서 빠르게 시장침투를 시작했다. “모바일 퍼스트, 클라우드 퍼스트(Mobile First, Cloud First)”를 외치며 취임한 사티아 나델라의 지휘하에 업무용 협업툴과 화상회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서비스를 만들어냈고, 일일사용자는 팬데믹이 시작되던 지난 3월 3천2백만 명에서 지난 달에는 1억 1천 5백만 명으로 성장했다. (슬랙은 일일사용자 1천 2백만 명을 기록한 지난해 이후로 정확한 숫자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중요한 성장기회를 놓치게 된 슬랙의 필요와 제대로 된 기업용 커뮤니케이션, 협업툴을 원했던 세일즈포스의 필요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슬랙으로서는 막강한 기술력과 자금, 그리고 고객들을 가져와 서비스를 성장시켜줄 “큰 형”이 필요했는데 세일즈포스라면 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워낙 큰 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낙관적이지는 않다. 170억 달러라는 밸류에이션은 10년 전 페이스북의 수준으로 엄청난 금액이고, 세일즈포스의 투자자들이 쉽게 승낙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있다. 하지만 세일즈포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인수합병이다.

당장 마이크로소프트가 다이내믹스(Dynamics)라는 소프트웨어를 내놓으면서 ERP와 CRM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오라클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워야 한다. 세일즈포스는 슬랙이 그 교두보가 되어줄 것으로 믿고 지갑을 열기로 한 것이다.

Newsletter
디지털 시대, 새로운 정보를 받아보세요!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더코어 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