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수요 둔화? No! 가장 큰 자동차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고 있고,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양한 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선 KBS뉴스, SBS뉴스, 커피팟, 슈카월드 등이 이러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근거 중 대부분은 잘못된(!) 일부 미국 언론보도에서 출발하고 있다. 때문에 그릇된 주장이다. 자동차 시장은 전쟁을 시작했으며, GM, 포드, 폭스바겐 등은 1차 전쟁에서 패배를 경험하고 있고 도요타는 전쟁에 참여도 하지 못한 채 패전국으로 전락할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간신히 교두보를 확보하고 있다.

이 글은 먼저 전기차 수요 둔화 주장을 비판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 전쟁의 전선을 조망하고자 한다.

자동차 전쟁의 소음(noise)

2023년 10월, 11월 다양한 미국 언론이 전기 자동차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 보도들은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충전이 안되고 있다(월스트리트저널 10월 15일 보도)”, “식어가고 있다(블룸버그 11월 4일 보도)”는 식의 이야기에 집착하고 있다. 10월 15일 WSJ 보도는 ‘자동차 딜러’의 주장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GM과 포드의 딜러(!)는 전기차 판매가 매우 낮은 이유를 충전 시설의 미비에서 찾고 있다는 내용이다. CNBC도 11월 1일 ‘딜러의 목소리'을 전달한다. Money.com은 같은 11월 1일 보도에서 ‘딜러'를 삭제하고, GM과 포드의 배터리 신설 공장 투자 연기 및 (팔리지 않는) 전기차 모델의 양산 설비 확충을 보류한 소식 등을 전하며 미국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뉴욕타임스도 11월 7일 이와 유사한 GM과 포드의 투자 유예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 전기차 시장이 “둔화되고 있다”는 딜러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전기 자동차의 성장(growth)은 꺾이지 않고 있으며 다만 성장률(growth rate)이 기대치보다 낮다라는 표현을 잊지 않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11월 27일 뉴스에서 미국 전기차 시장이 ‘주춤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보도들 중 어느 것도 논지를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실제 판매량보다는 전기차에 대한 관심 감소를 보여주는 퓨 리서치 센터의 여론조사를 인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한 그래프는 미국의 전기차 판매가 여전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위 CNBC 보도는 딜러가 전기차 재고를 판매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한 데이터를 인용하고 있지만, 이는 딜러가 GM과 포드의 전기차 모델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너무 많이 주문했다는 신호일 뿐이다. 그리고 Money.com 기사는 2023년 전기차 판매량을 2022년도 판매량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2023년 예상 판매량과 비교하고 있다. 예상 판매량보다 낮은 실제 판매량을 보며 ‘시장 둔화'를 추론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다른 예를 보자. 슈카월드가 전기 자동차 시장의 캐즘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 중 하나는 파이낸셜타임스 11월 13일 보도의 아래 지표다. 이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것은 맞다. 경기침체 국면에서도 유럽은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내연기관 자동차를 포함한 전체 자동차 시장이 17% 성장했다. 동기간 유럽 전기 자동차 시장은 무려 55% 성장했다(acea 시장보고서). 다만 유럽 시장에서 7월부터 9월까지는 자동차 시장 전체가 ‘정기적으로' 비성수기에 속한다. 이 지표 오른쪽처럼 이 때 유럽 전기 자동차 판매 성장률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물론 2023년 3분기 테슬라 베를린 및 상하이 공장의 일시 생산 중단도 판매 성장률 하락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장률은 +다! 이 글 아래 통계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전기 자동차의 10월 및 11월 판매 성장률은 미국과 유럽 모두 다시 높아지고 있으며 전기 자동차로의 전환은 2023년 극적 순간을 맞고 있다.

미국 전기 자동차 시장의 실제 데이터는 어떨까? 2023년 11월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100만대를 넘어섰다. 2021년 대비 이미 54.5% 성장한 미국 전기차의 2022년 판매량은 약 80만대 수준이다. 아래 블룸버그의 분석처럼 2023년 미국 전기차 총 판매량은 120만대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2023년에도 미국 전기차 시장은 전년 대비 최소 50% 성장한다.

50% 성장률을 ‘식어가고 있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전기 자동차 판매량이 예상보다 적거나 유럽과 중국보다 적다고 해서 전기차 전환이 정체된 것은 아니다. 충전소가 부족하고 일부 미국인들이 그리고 한국인들이 아직 전기차가 미래라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분명히 걱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기차 혁명이 정체되었다, 캐즘을 통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에 불과하다.
이러한 배경 아래 블룸버그는 12월 5일자 보도에서 “전기 자동차 속도 저하에 대한 보도는 크게 과장되었다(Reports of an Electric Vehicle Slowdown Have Been Greatly Exaggerated)"라는 제목으로 속도 저하를 반박하는 구체적인 통계 데이터를 제시하고 있다. 참고로 블룸버그가 2023년 12월 전망한 2023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플러그인(Plugin)을 제외하고도 1,050만대에 이른다. 세계 전기 자동차 시장 또한 식어가고 있지 않다!

(출처: BloombergNEF)

자동차 전쟁의 승자와 패자

전기차 전환은 자동차 시장의 질서 재편을 동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구별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현재까지 1차 패자로 스스로 인정한 곳은 폭스바겐 그룹이다. 폭스바겐 브랜드에는 폭스바겐, 아우디, 스코다, 세아트, 포르쉐,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이 속한다. 폭스바겐은 전통 완성차 기업 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규모로 전기차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차 판매 실적은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531,500대다. 동기간 중국 시장에서 판매된 폭스바겐 그룹 전기차는 117,100대다. 저조한 실적이다. 참고로 2023년 중국 전기차 판매 규모는 약 8백50만대로 예상되고 있다. 23년 전체 중국 자동차 기업의 유럽연합 전기차 판매 대수는 22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의 판매 실적도 문제지만 전기차 생산에서 경제적 효율성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23년 11월 27일 폭스바겐 대표는 “기존의 많은 구조와 프로세스, 높은 비용으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폭스바겐 브랜드로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라며 (테슬라 대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대규모 인원 감축을 예고하고 있다.

GM과 포드의 사정은 폭스바겐과 비교해서 더 참담한 수준이다. 2035년 내연기관 차량 판매 생산을 중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GM의 2023년 성적은 초라하다. GM의 2023년 1월부터 9월까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량은 약 56,000대다. 나아가 GM은 2024년까지 전기차에서 수익이 발생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포드도 유사한 상황이다. 2023년 1월부터 11월(!)까지 전기차 판매량은 62,460대다. GM과 포드 입장에서 연간 120만대 전기차 판매 시장에서 각각 10만대에 미달하는 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을 ‘냉각', ‘정체'라 충분히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시장을 탓할 일이 아니다. GM과 포드의 전기차 모델 정책에 문제가 없는지 따져볼 일이다. 참고로 크라이슬러와 지프(Jeep)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스텔란티스는 2023년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도요타. 다른 글에서 분석하겠지만 도요타는 노키아 함정에 빠져있다. 도요타의 대규모 공급망과 생산시설이 전기차 전환을 과연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인 수준이다.
자동차 전쟁은 전통 완성차 기업과 테슬라, BYD 등 신생 전기차 기업 사이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과 중국 정부 사이에도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유럽과 중국 사이에 전기차를 둘러싸고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다. 중국의 러시아 군수품 생산 지원, 유럽 기업의 중국 투자 축소 및 철수,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프로젝트 탈퇴 등 유럽과 중국 관계가 악화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사는 전기차다. 중국은 유럽에 말그대로 전기차를 쏟아내고 있다. 중국은 2022년부터 놀라운 속도로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전기차 덕분이다. 여기서 중국 전기차 수출의 대부분은 유럽을 향하고 있다. 참고로 최근 태국에서 중국 전기차 수출량이 급증하고 있다.

(출처: 블룸버그)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2025년까지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약 15%가 중국에서 생산될 것이며, 그 중 일부는 테슬라나 폭스바겐과 같은 서구 자동차 회사의 중국 공장에서, 다른 일부는 BYD와 같은 중국 기업에서 생산된다.

중국 정부는 2023년부터 전기차 구매시 세금 혜택외의 보조금 지원 정책을 폐지했다. 그러나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크게 확대하고 있다. 대당 1,400 달러 이상이 생산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다. 나아가 중국 전기차 기업에 저렴한 토지와 낮은 이자율의 금융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전기차 R&D에 막대한 보전금을 지원하고 있다. 전기차 소비에서 전기차 생산으로 중국 정부 보조금 정책의 무게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전기 자동차 소비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공급 보조금이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비 보조금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매우 쉽다. 유럽 소비자는 두 번의 보조금을 받는 꼴이다. 중국이 유럽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를 많이 생산할 수 밖에 없다.

중국 전기차 수출이 급증하는 데에는 다른 한가지 원인이 더 존재한다. 중국은 배터리 공급망 관련 채굴을 제외하고 정제(material processing)와 배터리 셀 생산까지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다.

(출처: 블룸버그)

전기차 생산비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에 달한다(블룸버그 보도). 중국의 LFP 배터리는 유럽에서 생산되는 배터리 대비 33% 이상 저렴하다(블룸버그 보도). 생산 비용 측면에서 중국 전기차 기업의 경쟁 우위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참고로 BYD 등 중국 전기차 기업은 전기차에서 긍정의 순이익률(profit margin)을 기록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순이익률은 중국 전기차가 유럽 시장에서 전기차 ‘가격 인하'를 감행할 수 있는 여지를 선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 엔지니어와 기업가들의 독창성과 혁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전기자동차로의 산업 전환은 ‘신생' 자동차 제조기업에게 내연기관의 함정에 빠져있는 전통 자동차 기업의 지배력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기회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다.

하지만 중국산 전기차가 대량으로 유럽시장에 쏟아지면서 유럽연합 집행부는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불공정 경쟁이 발생하고 있다고 바라보는 유럽 정치권의 시각은 결국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로 이어질 수 있다(블룸버그 보도). 유럽 경제에서 자동차 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유럽 노동력의 7%가 자동차 부문에서 종사하고 있다. 고용 숫자로 보면 2021년 기준 자동차 부문 노동자 수는 12,880,199명이다. 유럽이 자동차 산업을 잃게 되면 유럽 경제는 탈산업화 수준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유럽과 중국 사이에 전기차를 둘러싼 무역 전쟁은 앞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로 결정한다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관세는 한 가지 옵션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선 환율 문제다. 위안화가 유로화 대비 평가절하되어 있어 관세 효과를 부분적으로 상쇄할 수 있다. 관세는 상호적이다. 유럽 전통 자동차 기업에게 있어 중국 자동차 시장은 매우 중요하다. 관세는 가뜩이나 낮아지고 있는 유럽 자동차 기업의 중국 시장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 더욱이 중국 전기차 품질은 유럽 자동차 기업의 전기차와 비교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관세가 부과된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럽은 관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억제법(IRA)에 상응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IRA는 전기차 소비 보조금보다 더 큰 규모로 미국내 배터리 생산 공급망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유럽연합 전기차 R&D에 보조금 확대를 또한 고민해야 한다. 참고로 한국 정부 또한 전기차 생산 및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조치로는 전기차 스타트업 장려다. 테슬라 그리고 BYD가 기존 시장과 기존 기술에 크게 의존하는 거대 자동차 업체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럽에는 제2의 테슬라가 절실하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전통 완성차 기업에게 있어 이제 길고 평온했던 백일몽은 끝났다. 저가 모델을 둘러싸고 테슬라 대 BYD 등 신규 전기차 기업 사이에서 벌어질 치열한 경쟁, 신규 전기차 기업과 전통 완성차 기업의 경쟁 그리고 전기차 전환을 위한 국가 정책 등 대결 전선이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전기차 시장은 다양한 부침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장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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