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런치 스터디 후기를 올립니다.
전 개인적으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론과 현장이 어떻게 만날 수 있고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지 여러 단초를 찾았다고 할까요. 이렇게 공부하면서 한국에서 발생하는 여러 저널리즘 현상을 여러 각도로 이해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제가 욕심이 지나쳤던 탓인지, 발제문을 너무 길게 정리해 왔습니다. 발제 시간만 30분을 훌쩍 넘겼더라고요. 토론할 시간이 부족했던 건 아니지만 제가 조금더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서 정리를 했더라면 더 풍성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이날 혹시나 싶은 생각에 두 가지의 토론 거리를 준비해왔습니다.
1) '정치학의 저널리즘에 대한 미시적 접근'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은 아시아적 발전 저널리즘 모델에 가까울까 아니면 미국식 객관적 뉴스 모델에 가까울까? 아니면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을까? 그런 유형으로 굳어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아시아적 발전 저널리즘 모델은 저널리즘의 고결성과 병존할 수 있는 개념일까?
2) 한국 기자들의 정파성은 서구 저널리스트들(독일 저널리스트 등)과 비교했을 때 유난스러울 정도로 유착적인가? 특히 출입처 관행과 관련해서, 자신을 정치적 행위자로 사고하고 정당의 이익을 대변하는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에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 과도하게 미국적인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이런 토론 거리를 미리 준비해 간 건 혹시라도 첫만남의 어색함 때문에 주제 토론이 이뤄지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개인적인 의문거리이기도 했고요. 특히 울프강 돈스바흐와 토마스 패티슨의 2014년 논문의 조사 결과를 보고 나서 이 의문은 더 깊어지긴 했습니다. 아래 도표를 한번 참고해 보셨으면 합니다.
김아무개 구독자님은 언론중재법에 대한 토론 거리를 제시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저널리즘 모델과 이를 해결하는 방식으로서 권위주의 모델이 뒤섞인 채 적용되고 있는 지금의 언론중재법 논의는 철학과 접근방식의 모순이 뒤섞여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염아무개 구독자님은 제가 제안한 두번째 토론거리와 관련해서 기자들의 정파성과 언론사의 정파성은 분리해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 사례를 언급하시면서 언론사의 정파성와 기자 개인의 정파성의 관계나 위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셨고요.
분명 바비 젤리저의 '왜 저널리즘은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나'는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저널리즘 관련 제도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풀어줄 수 있는 좋은 틀을 선사해준 것 같습니다. 제가 조금더 핵심을 잘 다뤘다면 더 풍성한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었을 텐데. 여전히 아쉬움은 남네요.
기후 위기 시대 저널리즘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짚어주신 한아무개 독자님, 그리고 디바이스 문제로 의견을 나누지 못했던 정아무개 독자님, 잠시 들르셨다가 어색하셨던지 곧 퇴장하신 최아무개 독자님께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주 금요일에 두 번째 런치 스터디를 이어갈 텐데요.
함께 읽어볼 텍스트는 다음주 월요일에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이날 참석해주신 유료 구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발제문 전문 보기 (유료구독자만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