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멸망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질문해 볼까요? '이타성과 효율성이 공존할 방법은 없을까요?' '우리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먼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까요?'
이런 고민에 대한 해답의 단초를 옥스퍼드 대학교의 윌리엄 맥어스킬(William MacAskill) 교수(철학과)가 설명하는 ‘장기주의(Longtermism)’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윌리엄 맥어스킬 교수가 BBC에 기고한 글을 토대로 ESG 경영, 기후 보존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의 전제가 되는 생각인 장기주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인류는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지금껏 살아온 삶보다 훨씬 더 긴 삶이 남아있다고 할 때,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어쩌면 우리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음을 깨닫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인류 역시, 먼저 태어나고 죽은 이들보다 앞으로 태어날 이들의 수가 훨씬 많으며, 작은 실수 하나로 인해 여태껏 쌓아 올린 우리 문명 전체가 휘청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 시기를 거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입니다.
이는 우리가 전보다 크게 성숙해지거나 도덕적으로 변해서라기보단, 수많은 사고와 경고에 반복적으로 노출됐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사춘기 청소년처럼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감과 위기의식을 어렴풋이 인지만 할 뿐, 이러한 인지를 구체적인 행동으로까지 이어가려 하진 않고 있습니다. 인류가 더욱 성숙하고 건강해지기 위해선 장기주의(장기적 관점 우선주의)라고 불리는 사고방식을 명확히 이해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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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주의란 현재가 아닌 장기적인 미래를 중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사상입니다. 장기주의는 미래에 초점을 맞춘 채,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세대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를 추구합니다. 기후 변화, 자원 부족, 핵폐기물 등 우린 늘 미래의 문제들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고민의 주체에서 그 미래를 살아갈 미래의 사람들은 늘 배제되곤 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회 운동들은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소수자’들을 위해 이뤄집니다. 장기주의는 미래 세대 역시 소수자에 속한다고 말합니다. 분명 미래는 미래 세대의 것이지만, (그들은 아직 태어나지조차 못했기에)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현세대에 의해 결정됩니다.

만일 인류가 평범한 포유류의 멸종 주기를 따른다면 인류에게는 약 70만 년이 남아있겠지만, 인류는 절대 평범하지 않죠. 인류는 상상도 못 할 이유로 당장 수십 년 뒤 멸종할 수도 있으면서도, 상상도 못 할 모습을 한 채 수억 년 뒤까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인류사의 끝자락에 서 있는지, 초입에 서 있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판단의 권리는 미래 세대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린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인류 멸종을 막아라!
첫 번째는 인류가 멸종할 확률을 줄이는 것입니다. 만일 인류가 멸종한다면 미래 세대는 탄생조차 할 수 없겠죠? 코로나19는 우리가 팬데믹과 인류 멸종의 공포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줬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수많은 동물 실험과 자연 개발은 더 강하고, 다양한 전염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더 뛰어난 백신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파괴적인 생화학 무기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집단 지성을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는 플랫폼 ‘Metaculus’는 세계 인구의 95%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팬데믹이 발생할 확률이 1%라고 밝혔습니다. 스카이다이빙 중 사고사가 일어날 확률보다 1,000배 이상 높습니다.
팬데믹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MIT의 생물학 교수 케빈 에스벨트(Kevin Esvelt)는 폐수에서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병원균을 탐지하고, 즉각 처리하기 위해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구동 기술(문제가 있는 유전자를 찾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핵산 관측소를 설립했습니다. 케빈 에스벨트는 이 기술을 통해 사회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에스벨트는 원자외선(far-UVC) 조명 연구를 지원했습니다. 원자외선 조명은 인체에 무해하면서도 미생물 병균을 살균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원자외선 조명이 보편화 되어 전 세계의 빌딩마다, 또 방마다 설치된다면 팬데믹은 물론 각종 호흡기 질환은 더이상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최근 설립된 옥스퍼드 전염병 과학 연구소는 혁신적인 백신 개발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제약 분야의 스타트업인 ‘알베아(Alvea)’는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백신을 개발해 빈곤층을 팬데믹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현세대의 건강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동시에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류와 문명이 팬데믹에 의해 파괴될 위험을 줄여줍니다.
미래 세대가 진보하려면
팬데믹으로부터 살아남았다면, 다음 목표는 미래 세대가 ‘더 나은’ 문명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사회의 주류가 되는 가치를 바꿔야 합니다. 과거 세대는 민주주의, 유색인종의 권리, 남녀평등을 쟁취하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투쟁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남아있죠. 현세대는 과거 세대의 투쟁을 이어받아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남겨줘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AI와 같은 첨단 기술은 분명 악용될 여지가 많고, 지난 수십 년 동안 독재와 전체주의 정권이 민주주의에 의해 뒤집혔듯 민주주의 역시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타락할 수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모두 사라지거나, SF영화에서처럼 AI에게 인류가 지배당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전문가들은 AI가 근미래에 인류를 완전히 능가할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때가 온다면, 장기주의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장기주의는 AI가 인류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AI의 안전성과 통제 가능성을 강화할 것을 주장합니다. 장기주의자이자 버클리 대학의 컴퓨터 과학과 교수인 스튜어트 러셀(Stuart Russell)은 인간 호환 AI 센터를 설립했습니다. 이 센터의 목적은 고도로 발달한 AI가 인간 존엄성, 평등, 자유 등의 가치를 의무적으로 학습하는 것입니다.
21세기는 인류의 운명에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가져다 주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술을 통해 우린 우리 자신에게도, 서로에게도, 환경에도 지나치게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쩌면 아직 사춘기를 겪고 있는 인류에게, 지금의 기술력과 힘은 너무 과분하고 위험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장기주의, 현실적인 이야기인가?
장기주의는 단순한 몽상이 아닙니다. 장기주의는 ‘효율적인 이타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요. 지금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도 당연하고 보편적인 생각입니다. 이에 대해선 이미 많은 철학적, 경제학적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려는 시도들도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장기주의는 미래 세대를 돕기 위한 현세대의 헌신적 행동을 요구합니다. 수입의 일부를 기부하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찾아가 봉사하는 등의 행동 말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장기주의를 더 손쉽게 실현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단체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봉사기관, 재단, 자선 단체 등을 거친다면, 비교적 쉽고 편하게 장기주의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미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지만, 장기주의는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장기주의는 여러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요. 독일의 철학자 에밀 P. 토레스(Émile P Torres)는 여러차례 기고를 통해 "장기주의는 너무 먼 미래를 보고 있다"며, "장기주의자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면 미래가 오기 전에 인류는 현세대에 다 굶어 죽거나 기술 부족으로 멸종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재와 과거 세대가 가진 문제들은 모두 기술이나 자원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진정 미래 세대를 위하려면 현 세대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 빠른 기술 발전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기주의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장기주의의 주장대로 모든 전염병과 질병에 특화된 백신을 개발하고,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멈추고 신재생 에너지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기존의 시스템을 당장 그만두고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한다는 건 비용은 둘째 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지 조차 불확실합니다. 만일 실패한다면 어떨까요? 인류는 그대로 멸종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기주의에 반대하는 이들은 장기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발언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장기주의에 의거해 미래 세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 무조건 현세대가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함을 의미할까요? 장기주의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아니, 애초에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때도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윌리엄 맥어스킬 교수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에서 장기주의를 연구하는 토비 오드(Toby Ord) 교수는 생화학 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설립된 ‘생물무기금지협약(BWC)’의 연간 예산이 맥도날드 점포 단 하나의 연간 예산보다 적다고 말합니다. 이는 현세대가 당장의 편안함과 이익에 눈멀어 미래 세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장기적인 행동은 단기적으로도 이익이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미래 세대에게 문명을 물려주기 위해 팬데믹을 예방하는 것은 현세대에게도 이익이 됩니다. 화석 연료를 친환경 연료로 대체하는 건 미래 세대에게 깨끗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360만 명이라는 대기 오염에 의한 연간 사망자 수를 줄여주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자유, 평등, 박애가 바로 지금 실현됐을 때의 가장 큰 수혜자는 지금을 살아가는 현세대입니다.
우린 종종 지극히 좁은 시야를 가지곤 합니다. 광대하지만 아득한 미래를 애써 외면하기도 하죠.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쓰레기를 마구 만들기도 하고, 비윤리적인 기술과 사상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선 이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할 때가 있는 거야’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 뒤에 ‘더 나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은 없어 보입니다. 효용의 크기나 지속성에 상관없이 ‘내’가 행복한 것이 무조건 중요할까요?
현세대는 여전히 많은 위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제3차 세계대전은 발발할 수 있고, 생화학 무기가 쏟아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AI의 지배를 당하거나, 코로나19보다 심한 팬데믹에 의해 고통받을 수도 있습니다. 장기주의는 결국 이러한 위험들을 해소하는 방법에 관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