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에 열린 K리그 FC서울과 대구FC의 6R 경기는 총 45,007명의 관중을 동원했습니다. 국내 프로 스포츠(국가대표 경기 제외)를 통틀어서 코로나19 이후 한 경기 최다 관중수였습니다.

2023년 시즌 K리그가 개막하고 2달 동안 4만 명은 커녕 3만 명을 넘긴 경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 점도표 상에서도 해당 경기는 혼자 유독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죠.
이 날 경기에 이렇게 많은 관중이 모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가수 임영웅이 경기 전 시축과 축하공연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임영웅 효과는 관중수 외에도 여러 방면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인 게 유튜브 조회수입니다. 4월 14일 기준으로 지난 2주간 FC서울 공식 유튜브 계정의 동영상 조회수 현황은 아래와 같습니다.

썸네일에 임영웅이 들어간 영상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셀럽의 인기가 스포츠 경기의 인기를 압도해버리는 모습은 K리그나 국내 스포츠계에서만 보이는 건 아닙니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 경기라고 불리는 NFL 슈퍼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해 2월 13일에 열린 슈퍼볼LVII은 1억 1,310만 명이라는, 역대 3번째로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한 슈퍼볼이었습니다(역대 1위는 1억 1444만 명의 슈퍼볼XLIX). 경기 내적으론 톰 브래디 이후 최고의 선수 자리를 꿰찬 패트릭 마홈스가 큰 화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하프타임쇼에 나선 리아나(Rihanna)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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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유튜브 조회수에서 드러납니다. 4월 12일 기준 슈퍼볼 경기 하이라이트가 조회수 922만 회를 기록 중인 반면, 리아나의 하프타임쇼는 1.3억 회를 기록 중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뺏겼지만 K리그와 NFL은 오히려 기뻐하는 중입니다. 셀럽을 따라서 스포츠에 유입되는 팬들도 많고, 팬이 되진 않더라도 자신들의 브랜드를 꾸준히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셀럽으로 인한 스포츠 인기 증가를 가장 반가워할 이들은 OTT 플랫폼들일 것 같습니다. 위의 사례들에선 쿠팡플레이(K리그 디지털 중계권 독점 중)와 애플(NFL 중계&슈퍼볼 하프타임쇼 스폰 중)이 되겠습니다. 이들은 위의 사례에서 셀럽을 섭외하거나, 홍보에 적극 활용하는 등 스포츠를 스포츠 외적 콘텐츠와 결합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플랫폼 차원에서 알아서 셀럽을 섭외하고, 2차 창작 콘텐츠를 제작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진행 중입니다. 덕분에 대부분의 프로 스포츠가 OTT와 중계권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간 OTT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플랫폼이었습니다. 플랫폼들의 목표도 최대한 많은 드라마, 영화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발주자 OTT의 고민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데요. 문제를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① 구독을 유도할만큼 인기있는 콘텐츠는 한정적임 ② 소비자들은 충분한 수의 콘텐츠가 있어야만 구독을 함 ③ 앞의 두 단계를 만족하기 위해 지불할 비용이 너무 큼 ④ 설혹 비용을 감당하더라도 구독자 수가 그에 상응할 만큼 증가하리란 보장 없음(불확실성이 큼).
넷플릭스, 티빙, 프라임 비디오 등 시장에 얼추 자리를 잡은 OTT들은 오리지널 콘텐츠로 문제를 타개하고자 했습니다. 디즈니플러스 등 후발주자라 볼 수 있는 OTT들도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콘텐츠 제작 비용 부담이 너무 커진 것입니다. 국내 가입자수 2위 OTT 티빙은 2022년 1,191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대비 56% 증가한 것입니다. 웨이브는 2021년 대비 118% 증가한 1,217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습니다.
티빙과 웨이브 모두 매출과 구독자 수는 증가했습니다. <서울체크인>, <환승연애>, <술꾼 도시 여자들> 등 오리지널 콘텐츠들도 흥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제작 비용이 너무 크다 보니 적자 규모만 커졌습니다. 그래도 투자 규모를 쉽게 줄일 수 없는 건 콘텐츠를 꾸준히 공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아직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OTT들이 오리지널 콘텐츠에 사활을 걸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오리지널 콘텐츠는 제작 비용도 크고, 성공 가능성도 낮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스포츠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스트리밍 꽤 매력적입니다. 매일 혹은 매주 경기가 펼쳐집니다. 일종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매일 공급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당 스포츠 팬이라는 확실한 수요자들도 존재하죠. 이들은 웬만하면 고정 시청자 층으로 남기도 합니다.
스포츠는 대체재도 없습니다. 야구를 축구로 대체한다거나 축구를 농구로 대체하기도 어렵고, 같은 종목이라도 내 응원팀을 다른 팀으로 대체하거나, 리그를 다른 리그로(예를 들면 KBO를 MLB로) 대체하기도 어렵습니다. 중계권 계약이 독점으로 이뤄진다면 해당 종목, 리그의 팬은 고정 가입자로 유치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요를 예측하기 쉬워진단 장점도 낳습니다. 스포츠는 드라마나 영화에 비해 경기별, 시즌별 시청자 수의 편차가 작습니다.

위 그래프는 KBO와 K리그의 2014~2019년까지의 관중 수 변화를 나타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시청자수는 아직 일관되고 명확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관중수를 통해 대략적인 추세만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우상향하던 그래프가 2017년을 전후로 우하향하는 모습으로 바뀌긴 합니다. 하지만 OTT 서비스가 2017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넷플릭스 가입자 수 변화 그래프 참고)을 보면, 관중 수가 감소한 만큼 스트리밍 시청자 수가 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미국에서도 온라인으로 스포츠를 감상하는 이들의 수가 2019년을 전후해서 2~3년 간 크게 증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매해 특정 스포츠 종목, 리그의 시청자 수는 꽤 일관되고 예측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OTT 입장에선 스포츠 중계권 계약에, 또 홍보나 콘텐츠 제작 비용에 어느 정도를 투자할 지 감을 잡기 쉬워집니다. 티빙과 웨이브가 제작비 감당을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감안할 때, 비용 설정이 용이하단 점은 큰 장점입니다.
해외진출엔 부적절할 수도
그러나 스포츠 스트리밍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글로벌 진출이 힘들단 점입니다. 쿠팡이 여러 방면에서 벤치마킹 중인 아마존의 사례를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마존도 NFL, 프리미어리그, MLB 등 인기 스포츠 리그 중계에 큰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OTT 시청자 수를 크게 증가시켰습니다. 하지만 '콘텐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영화사 MGM을 85억 달러에 인수했고,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위해 스포츠 중계권료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큰 금액을 투자 중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작비로만 5억 가량을 쓴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가 있습니다.
스포츠 스트리밍으로 승승장구하던 아마존이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결국 글로벌 진출입니다. 스포츠 스트리밍은 한번 중계권을 구매하면 매일 독점 콘텐츠가 자동으로 생산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 지역/국가를 대상으로만 이뤄집니다.
또한 스포츠 경기와 콘텐츠의 지분은 어찌 됐든 해당 스포츠를 주관하는 리그에게 있습니다. OTT가 소유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스포츠 스트리밍의 인기가 늘고 경쟁력이 강화된다 해도 그게 OTT의 장기적인 내재 가치 증가로 직결되진 않습니다.
결국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려면 콘텐츠의 저작권, 소유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OTT가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이렇다 할 오리지널 콘텐츠가 부족한 쿠팡플레이보다 공중파 3사의 크레딧을 보유한 웨이브나 CJ ENM(tvN, Mnet 등)과 JTBC의 크레딧을 보유한 티빙이 훨씬 더 가치있다고 평가 받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늘 나오는 이야기지만 본질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력과 그 콘텐츠에 크레딧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쿠팡플레이 등 후발주자 OTT들이 스포츠 스트리밍을 무기로 삼는 게 당장은 훌륭한 선택이라 할 수 있겠지만, 미래 가치와 장기성을 키우기 위해선 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진 후엔 적극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생산해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