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역사는 저널리즘의 역사임과 동시에 인쇄 기술의 역사이다. 인쇄 기술의 역사는 다시 속도 경쟁의 역사이다. 더 빠른 속도를 향한 열망은 인쇄 기술의 오늘을 낳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인쇄기, 통상 윤전기로 상징되는 신문의 인쇄 기술은 신문의 빠른 성장을 추동한 발판이면서, 신문이 더 빠른 미디어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한 기초였다.(지금은 신문사의 생명줄을 움켜쥐고 뒤흔드는 계륵으로 남아있다.) 신문의 역사를 살피는 작업은 그래서 속도의 의미를 깨닫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신문은 라디오, TV와 같은 더 빠른 미디어와의 속도 경쟁에서 보기 좋게 살아남았다.  인쇄기의 속도를 크게 향상시키면서 그리고 컬러 오프셋 인쇄를 보편화하면서 그렇게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터넷과의 속도 경쟁에선 탈이 나고 말았다. 속도 경쟁력을 상실한 신문사는 자연스럽게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속도는 신문의 운명이었고 생존 그 자체였기에 이러한 결과는 어쩌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신문 인쇄 기술의 역사는 왜 신문이 디지털 대전회의 시대에 보다 더 빨리 치밀하게 적응해야 했는지 그리고 하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이 글은 속도를 좇기 위해 신문의 인쇄 기술이 어떻게 발전돼왔는지를 살피기 위해 작성됐다. 또한 무엇이 속도 경쟁을 낳았고 그 속에서 어떤 기술이 형성됐는지를 확인하는데 목적이 있다. 부가적으로 인쇄 기술이 관련 노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간단히 분석해볼 생각이다.

윤전기의 발전 궤적과 속도

국내 대형신문사의 1층 혹은 지하에는 어김없이 3~4층 높이의 윤전기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매캐한 잉크 냄새가 진동하는 이 공간에는 윤전부(혹은 국)에 배치된 윤전 엔지니어들이 밤을 새며 종이신문을 찍어내고 있는 신문사의 심장부이다. 윤전기는 신문사 투자 비용 가운데 핵심을 차지한다. 2009년 중앙일보가 베를리너판형으로 변경할 당시 일본에서 도입된 윤전기는 대당 가격이 250억원에 달한다. 당시 중앙일보는 윤전기 6대 도입에 무려 1500억원이라는 엄청난 출혈을 감내하면서도 윤전기 교체를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한때 금융가에선 중앙일보 위기설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