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 대학 학보사 시절

97년 2학기부터 98년 1학기까지. 학보사 취재부장, 편집국장을 거치는 동안 나의 토, 일요일은 새벽 공기와 늘 함께 해야 했다. 쿼크익스프레스 3.0으로 12면 내지 16면에 달하는 학보의 조판을 마치면 동이 트기 일쑤였다. 고된 컴퓨터 조판 작업을 마치고 프린터로 인쇄한 ‘지면 대장’을 주간 교수에게 확인받고 나면 다음 단계는 필름 인쇄 작업이다.

당시 한국대학신문(동대입구역 근처)은 내가 근무하던 학보사의 컴퓨터 조판, 필름 출력, 광고 영업을 대행했다. 주간 2만5000부~3만부 를 찍어내던 비교적 규모가 큰 대학언론사였기에 신경도 쓰였을 터. 한국대학신문은 매주 한 명의 조판 오퍼레이터를 학보사 편집국에 파견했고, 광고 영업 결과를 전달해줬다. 이들이 유치한 외부 광고는 필름 형태로 곧장 충무로 인쇄소로 보내졌다.

한국대학신문사에 대학 학보는 매출의 기반을 다져주는 중요한 고객사였다. 한국대학신문을 비롯해 몇몇 대학 학보사의 지면 광고를 묶어 패키지로 파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초보적인 형태의 지면 광고 네트워크였다. 한국대학신문사는 외간에 준하는 대행 사업으로 수익을 올리고 광고 네트워크까지 확보함으로써 최소한의 비즈니스 기반으로 다져갔다. 지금 이 학보사가 발행하는 신문은 중앙일보 윤전공장에서 외간 형태로 인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