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안경의 두 얼굴: 편리한 눈인가, 감시의 도구인가
😨 ‘스마트 안경’의 불편한 시선
- 메타가 안경업체 에실로룩소티카와 함께 판매하는 AI 글래스 ‘레이밴 메타’가 뜻밖의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최근 일부 남성이 스마트 안경으로 여성들을 몰래 촬영하거나 괴롭히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일부에서는 이 제품을 아예 ‘변태 안경(pervert glasses)’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구글의 스마트 안경 ‘구글 글래스’ 사용자에게 붙었던 ‘Glasshole’이라는 멸칭이 다시 떠오를 정도입니다.
- 반발이 커지자 스마트 안경을 찾아내는 앱까지 등장했습니다. ‘Nearby Glasses’나 ‘ZuckOff’ 등 블루투스 신호를 이용해 주변에 스마트 안경이 있는지 감지하는 무료 앱도 있는데요. 실제 악용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안경을 쓴 사람이 촬영 중인지 주변 사람이 쉽게 알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촬영하려면 기기를 꺼내 들어야 하지만 안경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촬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논란에도 판매량은 두 배
- 그렇다고 스마트 안경 시장이 위축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 세계 AI 안경 출하량은 420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메타와 새로 뛰어든 중국 업체들이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메타 내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여름 자사 스마트 안경 출하량도 지난해 여름의 두 배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 메타는 몰래 촬영을 막기 위한 조치도 강화했습니다. 촬영 중 켜지는 LED 표시등을 사용자가 훼손하려 하면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도록 했고, 스마트 안경으로 부적절하게 만든 콘텐츠를 삭제하거나 관련 계정을 정지시키기도 했습니다.
- 그러면서도 카메라 자체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올해 말까지 스마트 안경 라인업을 100개 모델로 늘릴 계획입니다. 다만 사생활 침해에 민감한 이용자를 겨냥해 카메라를 아예 뺀 ‘Ray-Ban Meta Audio’도 새로 내놨습니다. 카메라 논란을 피해갈 제품은 추가하되 스마트 안경의 핵심 기능으로서 카메라는 계속 가져가겠다는 전략입니다.
🥽 메타와 스냅, 정반대 전략
- 경쟁사 스냅은 아예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새로 공개한 증강현실(AR) 안경 ‘SPECS’는 평범한 안경처럼 보이는 레이밴 메타와 달리 사실상 얼굴에 쓰는 PC에 가깝습니다. 투명 렌즈와 카메라, 이어폰뿐 아니라 지도 보기, 도미노 게임, 키보드를 연결한 구글 문서 작업까지 가능합니다.
- 스냅의 에번 스피걸 CEO는 메타가 “스파이 안경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SPECS는 독특한 무지갯빛 렌즈 때문에 누가 봐도 전자기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어 몰래 촬영하는 기기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작다는 설명입니다.
- 대신 가격이 문제입니다. SPECS의 시작 가격은 약 2200달러로 메타의 가장 저렴한 제품보다 7배 이상 비쌉니다. 당장은 일반 소비자보다 인플루언서나 현장에서 작업하는 엔지니어 같은 업무용 이용자가 주요 고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메타가 평범한 안경 속에 AI를 숨기는 전략을 택했다면 스냅은 AI 기기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전략을 택한 셈입니다.
🇨🇳 중국까지 뛰어든 안경 전쟁
-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구글과 삼성도 올가을 안드로이드 기반 지능형 안경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중국에서는 알리바바·샤오미·INMO 등 업체들이 빠르게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올해 중국의 스마트 안경 판매 증가 속도는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빠릅니다.
- 시장 구조도 흥미롭습니다. 메타는 세계 스마트 안경 시장에서 81%라는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지만 중국에서는 알리바바·샤오미·INMO 등 상위 3개 업체를 합쳐도 출하량의 절반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 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만큼 기업들이 다양한 형태의 하드웨어를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 여기에 퀄컴은 여러 안경테에 넣을 수 있는 소형 AI 모듈을 공급하며 ‘화이트라벨’ 시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특정 브랜드 제품뿐 아니라 패션·의료·교육·산업용 안경에도 AI 기능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은 대부분 스마트폰과 연결하지만 앞으로는 몸에 착용하는 작은 연산장치와 연결하거나, 배터리 문제가 해결되면 안경 자체에 이동통신 기능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 AI 시대엔 ‘한 기기’가 아닐 수도
- 스마트폰 시대와 AI 시대의 가장 큰 차이도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통신, 인터넷, 음악, 지도 등 수많은 기능을 하나의 직사각형 기기에 모았습니다. 하지만 AI는 꼭 하나의 기기에 갇힐 필요가 없습니다. 안경뿐 아니라 펜, 펜던트, 가방, 반지 등 사용자의 일상 곳곳에 AI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퀄컴 측이 “정답은 하나의 기기가 아니다”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 그럼에도 스마트 안경에서 카메라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메타의 개인 AI 에이전트 ‘Muse’처럼 사용자를 대신해 행동하는 AI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람이 보고 있는 현실세계를 AI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장치가 아니라 AI에게 현실을 보여주는 ‘눈’이 됩니다.
- 바로 여기에 스마트 안경 산업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AI가 유용해질수록 더 많이 보고 들어야 하지만, 그럴수록 주변 사람에게는 더 강력한 감시기기가 됩니다. 스마트폰 다음을 차지하려는 기업들의 경쟁은 결국 더 좋은 AI를 만드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이 얼굴에 카메라를 달고 다니는 세상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를 둘러싼 싸움이기도 합니다.
https://www.economist.com/business/2026/09/24/how-tech-firms-hope-to-beat-the-backlash-against-pervert-glas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