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국언론학회 가을정기학술대회 토론문으로 작성됐습니다. 잡지의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근대사 속 사례로서 최남선의 ‘소년’을 주목한 것입니다. 국내에서 근대적 잡지 산업을 일으키고 혁신을 주도했던 그의 초기 노력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취지입니다. 최남선의 친일행위를 미화하거나 옹호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참고로 최남선은 이광수와 함께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록돼 있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침체하고 있는 국내 잡지의 디지털적 재구성 혹은 산업적 부활을 위해 과거를 되새기는 건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영미권의 잡지 혁신 사례를 관찰하며 더 나은 대안을 발견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과거의 성공과 실패 사례로부터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내는 것 또한 의미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근대 잡지의 원형을 다시금 들춰봄으로써 잡지의 역할 모델이 어떻게 변모해왔고 무엇을 놓쳐왔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