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일곱번째 성공 키워드는 “인터크로스(intercross)”다. 하이브와 BTS가 콘텐츠를 만드는 방식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다가 만난 단어가 바로 “인터크로스”다. intercross를 한국 말로 뭘로 표현하면 좋을지 구글에게 물어보니 그냥 “인터크로스” 란다. 굳이 한국말로 바꿔 보면 “서로 엇갈리게 하다”라는데, 그 보다는 “경계를 넘나들며(inter) 교차시킨다(cross)” 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케이팝의 콘텐츠적 강점을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가 바로 ‘혼종성(hybridity)’이다. 이 개념은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하다. 그래서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인터크로스라는 용어가 필요하다.
케이팝이 혼종적이라 함은 케이팝의 음악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알앤비, 힙합과 랩, 유러피안 록, 발라드, EDM 등 각종 댄스 비트들의 믹스가, 마치 커피믹스처럼 그 안에 ‘고유’한 한국산이 없더라도 당장 한국의 맛으로 인지되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혼종성은 서구 대중문화의 일방적인 영향력을 지나치게 크게 보는 문화제국주의적 주장에 반대하는 탈제국주의적 학자들에 의해 주창된 개념이다. 서구의 문화적 영향력 아래에서 근대화를 이룬 나라들의 대중문화는 어쩔 수 없이 토착 문화와 서구 문화의 혼종적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이런 혼종성은 서구의 문화 요소들을 단순히 모방하고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수입한 문화 요소를 각 지역의 맥락에 맞춰 다르게 배치하고 해석함으로써 지배-종속의 구조를 뒤집을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탈제국주의적 입장을 가진 학자들에게 케이팝은 혼종성의 대표적 사례였다(홍석경, 2020).
케이팝이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초석을 놓은 회사가 에스엠이다. 에스엠은 한국 가수를 해외 시장으로 진출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세계 팝 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빠르게 도입해 한국 상황에 맞게 바꿔내는 전략을 만들어냈다. 70년대 가수와 MC로 활동하다 연예계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에스엠 창업자 이수만의 독특한 이력이 이 전략을 정립하는 결정적 배경이 되었다. 이수만이 유학가있던 80년대 초반 미국 음악 시장은 MTV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시장이 격변하던 시기였다. 여기서 새로운 기회를 본 이수만은 한국으로 돌아와 미국 대중음악의 최신 트렌드를 자신의 음악에 접목하고자 했다. 그래서 한국 최초의 MTV 스타일 뮤직비디오도 1985년 발표된 가수 이수만의 <돌아와>라는 곡이었다. 자신의 활동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신인 가수 발굴을 위해 설립한 “SM기획” 에서는 대성공을 거두는데, 바로 미국 팝 가수 바비 브라운을 벤치마킹한 “현진영과 와와”였다. 이후 에스엠은 HOT와 SES를 기획하고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 방법을 활용했다.
나아가 에스엠은 한국의 작곡가, 프로듀서가 미국, 일본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곡을 제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외국의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곡 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미뎀, 코첼라 등 해외 대중 음악 관련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해외 뮤지션과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또한 SM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SM Town Live”라는 소속 가수가 합동 공연 하는 브랜드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해외 뮤지션들 사이에 에스엠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세계 각국의 작곡가들이 에스엠에 곡을 보내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매주 200곡 이상이 쌓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집중적으로 공동 작업이 필요할 경우 프로듀서 작곡가 등을 초대해 며칠 동안의 송캠프를 개최하여 앨범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들이 케이팝의 혼종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많은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은 에스엠의 방식을 차용하여 자신들의 맥락에 맞게 콘텐츠 제작에 나섰고, 케이팝은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로컬의 맥락은 오히려 피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고 케이팝은 국적을 알 수 없는 ‘무국적성’의 미학을 갖게 되었다. 로컬 특유의 느낌을 찾아 볼 수 없는 뮤직비디오와 미국, 영국, 일본, 북유럽 등 여러 사운드가 두루 섞인 코스모폴리탄적 음색이 대세를 이룬 것이다. 그러면서 서구의 음악 비평가들은 케이팝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서구에서 유래한 대중음악을 ‘팝’이라고 부르는데, 케이팝에서 “케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BTS가 이러한 서구 음악 비평가들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한 것이 2018년 “LOVE YOURSELF 結 Answer” 앨범에 수록된 <IDOL>이라는 곡이다. BTS는 이 곡에 “얼쑤” “지화자”, “덩기덕 쿵더러러” 추임새와 꽹과리 소리 등 한국 국악적 요소를 집어넣고, 뮤직비디오에서는 팔작지붕과 호랑이, 수묵화,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의상 등을 활용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리듬은 남아프리카에서 빌려온 댄스 음악 비트를 활용한다. 다양한 음악적, 시각적 요소들을 경계를 넘어, 교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간 케이팝에서 기피해왔던 ‘한국적 요소’가 사용되었지만 다양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BTS 이전 케이팝은 혼종적이라고 부르기에는 2% 부족했다. 바로 한국이라는 맥락을 지우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BTS는 그러한 금기들을 과감하게 넘어서 한국이라는 맥락도 과감하게 활용했다. BTS는 수입된 음악 스타일의 흉내에 그치지 않고 구성요소들의 독특한 조합과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적극 드러냄으로써 지극히 한국적인 혼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혼종은 다시 영향력의 근원지인 서구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의 역전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제대로 혼종성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 말고도 최근 전세계에서 인기있는 넷플릭스 드라마들도 BTS처럼 경계를 넘어 다양한 요소들을 교차하는 ‘인터크로스’적 속성을 갖고 있다. <오징어게임>을 보자. 데드 게임이라는 극의 플롯은 일본 만화에서, 알록달록 배경 공간은 케이팝 뮤직비디오에서, 그리고 극의 모티브는 한국 전통 놀이에서 가져 온 뒤 경계 없이 교차시킨다. <지금 우리 학교는>도 마찬가지다. 서구에서 유래한 좀비 서사에 교복과 학교라는 공간과 왕따, 학교 폭력이라는 극적 모티브는 한국의 맥락을 인터크로스 시킨다. 이처럼 경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요소를 교차시켜 새로운 혼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야 말로 한국을 넘어 전세계에서 먹히는 콘텐츠의 주요한 특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