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년 연장이 논란인데...
정년연장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고령화 대비책으로 정년 연장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임금 및 단체협약의 핵심 쟁점으로 정년연장을 제기하기도 했죠. 대체적으로 노동자들은 정년연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전역의 노동자들은 이에 반대중입니다.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연금도 2년 늦게 받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 정년연장을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연금 지급 시기가 늦어지면 은퇴가 늦어질 수밖에 없고, 여가시간과 삶의 질이 하락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청년층의 취업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측은 대부분 두번째 주장을 내세웁니다. 추가로 고령 노동자의 낮은 생산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타당한 주장이지만, 정년이 유지/축소될 경우 큰 타격을 입을 고령층의 소득문제에 대해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년 연장'에 대해 2회에 걸쳐 짚어봅니다. 우선 첫번째로 이 글은 정년 연장 논의에 앞서, 고령인구 빈곤 문제를 데이터 위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2. 국내 고령 빈곤율은 OECD 1위

위 그래프는 OECD 국가들의 51~65세 빈곤인구비율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는 5위입니다. 우리보다 빈곤인구비율이 높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미국, 칠레는 정년이 64~67세로 우리나라보다 높습니다.

위 그래프는 66~75세 빈곤인구비율입니다. 우리나라가 꽤 큰 격차로 1위가 됐습니다. 비교자료로 추가하진 않았지만 76세 이상 빈곤인구비율은 2위 에스토니아와 10%p 이상 차이나는, 압도적 1위입니다.

이상한 건 유독 고령 인구의 빈곤율만 높단 것입니다. 국내 고령인구의 빈곤 정도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이상할 정도로 높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2006년 이후부터 꾸준히 관찰됩니다.

선진국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빈곤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고령 인구 빈곤율도 함께 지속적으로 감소하진 않더라도 증가하는 경우는 적습니다. 반면 위의 그래프를 보면 국내에선 2000년대 초부터 2010년경까지 고령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빠르게 증가합니다. 2002년에 세계은행에 의해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고, 2008년에 FTSE에 의해 선진국 대우를 받음을 고려하면 희한하게 느껴집니다.
또 위의 그래프를 보면 과거부터 고령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꽤나 높았습니다. 국내 고령인구 빈곤은 꽤 오래된 문제인 듯합니다.
다음은 출생시기별 장년기 소득 대비 노후소득 비율을 나타낸 자료입니다. 다음 자료들은 서울대학교 이철희 교수님의 연구를 출처로 합니다.
3. 노후 보장=근로소득 보장

위 그래프는 45~54세 소득 대비 55세 이후 각 연령에서의 소득 비율을 나타냅니다. 물가상승률과 임금상승률을 조정한 자료입니다. 크게 세 가지가 눈에 띕니다.
- 소득의 연령별 감소 속도는 매우 빠르다.
- 과거 출생자일수록 감소 속도가 빠르다.(=36, 41년생이 46, 51년생보다 소득 감소 속도가 빠르다.)
- 최근 출생자일수록 노후소득 비율이 낮다.
연금, 수당 등 복지 지원이 최근으로 올수록 발전했을 거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내 고령 빈곤율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까닭은 다음 자료를 통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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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원천별 노후 소득 비율 중 근로/사업소득의 감소 속도입니다. 앞서 봤던 전체 소득 감소 그래프보다 전반적으로 기울기가 가파릅니다. 다른 소득들과 비교할 때, 근로/사업 소득의 감소 속도가 더욱 빠르단 것인데요. 근로/사업 소득은 정년이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일부 연령 구간에서 최근에 출생한 사람의 근로/사업소득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단 건 다소 의아합니다. 현대로 올수록 기술이 발전하고 직업이 다양해지면서 고령 인구의 노동 여건이 더 나아졌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론 ▲여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거나 ▲현대로 올수록 고령층 임금이 줄었기 때문일 걸로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그래프를 보면 또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늘어납니다. 이를 고려하면 ▲장년 소득이 상대적으로 증가했거나 ▲고령 임금이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근로/사업소득 외의 소득은 어떨까요? 우선 공적연금소득은 나이가 들수록, 또 출생시기가 최근일수록 그 비율과 증가 속도가 커집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1951년생의 64세 공적연금소득도 전체 소득의 8%도 되지 않네요.
공적이전소득은 오히려 출생시기가 과거일수록 높고, 재산소득/사적연금소득은 그리 비율이 높지도 않고 추세도 딱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근로/사업소득은 고령층에게도 주요 수입원입니다. 최근 출생자일수록 노후 소득 비율이 낮은 것도 최근 출생자의 근로/사업소득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적연금과 공적이전소득은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근로/사업소득의 감소분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4. 고령 근로자 증가와 청년 실업의 악순환
앞서 살펴봤듯, 공적연금과 공적이전소득이 노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연금이나 복지 지원 정책이 과거에 비해 꽤나 개선됐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고령 빈곤율은 개선되고 있지 않습니다.
가장 편한 해결책은 결국 연금이나 지원금을 더 많이 지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 고갈'이 머지않아 실현되는게 확실해진 상황에서, 지급금액을 더 늘린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결국 현실적인 해결책은 ▲고령 인구가 장년기에 모은 재산을 잘 보전하도록 해주거나 ▲고령 근로자의 고용안정성과 급여를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높은 고령 빈곤율을 기록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합니다.
많은 고령 인구가 생계를 위해 노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녀에게 부양을 받는 고령층이 감소했고, 국민연금은 (지속 가능성은 둘째 치더라도) 지급 금액이 적습니다.
특히 교육비, 주택비가 크게 증가하며 재산을 저축하기 어려워졌고, 많은 고령 인구는 제대로 된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고령 인구는 은퇴를 미루고 계속해서 근로하길 희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는 악순환을 낳았는데요.
고령 근로자 증가는 청년 취업난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장년/고령층에게 '청년 실업 증가는 곧 미취업 성인자녀 증가와 같은 말입니다. 미취업 성인자녀가 있으면 그만큼 쓸 돈이 많아지고, 재산을 저축하기 어려워지죠. 한 연구에 따르면 미취업 성인자녀가 있을 경우에 비취업 45~64세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출처: 이에스더(2013, 한국여성경제학회))
정리하자면:
고령 근로자 증가 -> 청년 취업난 심화 -> 개인저축 감소 -> 고령 근로자 증가
라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이 악순환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죠? 이는 지금의 장년층, 청년층도 이 악순환에 갇혀 있으며 미래에도 국내 고령 빈곤율은 높을 것임을 뜻합니다.
5. 노인이 일할 필요 없는 세상이 오려면
정책적인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의 고령 빈곤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복지 강화뿐입니다. 고령인구는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양질의/고임금 일자리를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는 만큼, 자녀 세대의 부양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독거노인의 수는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기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미래에 고령 인구가 될 이들, 즉 현재의 청장년층이 건강/생산성/재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건강과 인적자본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근로/사업 소득의 감소 속도를 완화해야 합니다.
국민연금 고갈과 초저출산이 동시에 겹치며 현재의 청장년층은 미래에 국가와 자녀 세대 모두에게 부양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미래의 고령 근로자도 많을 것이란 뜻입니다. 그들도 빈곤층이 되지 않게 하려면 최대한 젊을 적의 건강과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어 읽기] 정년연장 ② - 필요성과 방법론에 대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