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 정년연장 ② - 필요성과 방법론에 대해서

1. 저출산과 고령화도 문제다

지난 글에선 우리나라의 고령 빈곤과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고령 빈곤율은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높고, 이는 고령층이 노후를 근로/사업소득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령 근로자가 많을 수밖에 없고 청년들의 취업 난이도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인구 문제가 존재합니다. 바로 저출생과 고령화입니다.

2020~2070년 대한민국 생산연령인구(15~64세, 파란색), 고령인구(65세 이상, 주황색), 고령인구 구성비(65세 이상, 회색) 추이입니다. 생산연령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고, 고령인구는 급격히 증가합니다. Source: 통계청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저출산-고령화 콤보로 대한민국의 생산연령인구, 즉 노동인력은 빠르게 감소합니다. 대응책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 높은 출생율과 노동력을 가진 이민자 수급.
  • 적은 노동력으로도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기(기술, AI 등을 통해서)
  • 고령 인구를 주요 노동력으로 취급.

앞의 두 가지는 최근에 들어선 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만, 그것들에 기대기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빠른 속도로 다문화 국가로 전환하기도, 마냥 기술 발전을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면 세 번째 대응책은 좀 더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정년 연장이 대표적입니다. 이미 수 차례 정년 연장이 이뤄지기도 했고, 지금도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년 연장은 필요할까요? 혹은 필수일까요? 필요하다면 부작용은 없을지,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2. 정년 연장, 정말 필요한가?

다시 위의 그래프를 보면, 생산연령인구는 향후 10~15년 동안 심각할 수준으로 감소하지 않습니다. 그래프에는 없지만 65세 이상 노동력까지 포함하는 경제활동인구(15세 이상 취업자+구직자)의 경우에는 내년부터 완만한 감소를 시작합니다.

따라서 최소한 10년 가량은 노동력의 절대적인 양이 부족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각 산업별 적합성이나 노동력의 질 차원에선 노동자 중 고령 노동자 비중이 높아지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산업별 취업자 평균 연령 Source: 현대경제연구원

산업마다, 직무마다 필요로 하는 노동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노동 수요는 생각보다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고령 노동과 청년 노동은 상호 대체성이 낮습니다. 스포츠를 예로 들면 바둑이나 체조 같은 종목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전성기 연령으로 취급합니다. 반면 축구는 20대 중후반을, 야구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을 전성기 연령이라 봅니다.

3. 정년 연장의 효과 가설① - 노동력 대체?

이와 같은 노동 경직성으로 인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청년 노동자 감소분을 고령 노동자로 대체하려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여성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늘리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OECD 국가들의 연령별 여성 고용률 ⓒ경향신문

우리나라는 25~29세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여성 고용률이 OECD 평균보다 낮습니다. 특히 35~39세 여성 고용률이 최하위권인 이른바 'M자형'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평균적으로 결혼과 출산 이후인 30대 중후반에 경력단절이 일어나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지금처럼 청년 노동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들(30~40대 초반 여성)의 경력단절을 완화하거나 다시 경제활동인구로 전환하는 게, 고령 노동자를 증가시키는 것보다 효과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정년연장의 효과 가설② - 자영업 경쟁 완화?

ⓒ한국M&A경제신문, 통계청

정년 연장은 피고용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입니다. 그렇기에 고용주나 자영업자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고령 노동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프엔 없지만, 65세 이상 자영업자 중 고용인이 없는 자영업자 비율(즉 혼자서 하거나 가족끼리 하는 경우)은 약 50% 입니다. 이는 국내 고령 자영업자들이 경제적으로 열악함을 보여줍니다.

물론 이런 가설을 세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년을 연장하면 고령 자영업자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기존 고령 자영업자들 간 경쟁이 완화되면서 기존 고령 자영업자들도 정년 연장의 간접적인 혜택을 볼 것이다."

이 가설은 기업에서 퇴직하게 된 고령 노동자가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기존 자영업자들이 손해를 본다는 예상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리 신빙성이 있진 않습니다.

ⓒ한국고령화패널자료, 이철희

이른 정년으로 일자리를 잃고 창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매우 적습니다. 위 자료를 보면 50세 이상 모든 연령에서 자영업자의 현재 사업 지속기간은 10년 이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정년으로 일자리를 잃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자영업을 시작했음을 시사합니다.

즉 정년 연장이 고령 자영업자의 수를 유의미하게 줄이리라 보기 어렵습니다.

5. 정년 연장은 정말 효과적인가?

KDI 보고서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정년 연장의 사업체 규모별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년 연장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예상된 고령 노동자 증가수는...

  • 10~99인 사업체: + 0.382명
  • 100~499인 사업체: + 0.501명
  • 500~599인 사업체: + 0.603명
  • 1,000인 이상 사업체: + 1.004명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정년 연장 수혜자 수가 크게 증가합니다. 반면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엔 정년연장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매우 작습니다.

이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정년 연장을 추진할 명분을 약화시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사업체의 규모가 작을수록 고용인의 평균연령이 증가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정년 연장의 실제 대상이 돼야 할 고령 노동자 대다수는 소규모 사업체에 속하지만, 소규모 사업체는 정년 연장의 효과가 미미하단 겁니다. 즉 대다수 고령 노동자는 정년 외의 이유로 퇴직 중이기에, 이들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선 정년 연장이 아닌 다른 정책을 시행해야 한단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대기업/공무원 조직에만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상대적으로 고령 빈곤으로부터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정년 연장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고령 빈곤 개선 효과는 미미할 것입니다.

고령 빈곤자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낮은 대우와 임금을 감수 중입니다. 이들 일자리는 정년 연장의 효과가 매우 낮으며, 정년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해당 일자리에 계속 고용되는 게 빈곤을 해결해주리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6. 정년 연장과 청년 취업의 관계

정년 연장의 부작용은 청년 취업에 악영향을 미친단 것입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고령 노동력과 청년 노동력 간 대체성은 낮습니다. 또한 고령 노동자를 고용하면 그만큼 사업체의 임금 부담이 커집니다. 이는 사업체의 신규채용을 줄입니다.

다시 KDI 보고서를 보면, 정년 연장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청년 노동자의 감소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10~99인 사업체: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음.
  • 100~499인 사업체: -0.188명
  • 500~999인 사업체: -0.258명
  • 1,000인 이상 사업체: -0.996명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정년 연장이 청년 채용을 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통 청년 취준생들이 대기업 취업을 희망한다는 점에서, 정년 연장은 청년 취업난에 극심한 악영향을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 정년 연장의 부정적 효과는 정년 연장 시행 시기에 따라 다른데요. 향후 몇 년 간은 청년 취준생의 인구는 별로 감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2000년 출생자까지 인구 수가 60만 명을 상회하기 때문입니다(그땐 저출산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불 난 집에 기름 붓듯이 청년 취업난에 악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청년 노동 공급이 감소하는 시점에 점진적으로 정년 연장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출생자 수는 2001년부터 크게 감소하고 이후 40~50만 명, 심하면 30만 명 대를 기록 중이기 때문입니다. 노동공급 감소를 상쇄하고자 하는 목적이라면 그들이 고용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2025년 경부터 시행해야 합니다.

7. 정년 연장에 앞서 고려해야 할 점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 속에서 정년 연장은 언젠가는, 장기적으로는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에 있어선 더 섬세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우선 연금을 수령하는 연령과 정년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연금 수령 연령이 63세고, 정년이 60세니 현재로서 적절한 연장 기간은 3년입니다.

신규 채용이나 업무 인수인계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점진적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1990년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1차 연장했습니다. 이는 즉시 전국 모든 사업체에 적용되지 않고 2006년까지 16년에 걸쳐 서서히 추진됐습니다.

일본의 정년 연장 사례는 국내 기업들에게도 좋은 보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일본은 2021년 4월, 정년을 다시 한번 70세까지 했습니다. 이에 일본 기업은 자신들의 전통과도 같은 종신고용제를 폐지하고, 간단하고 쉬운 직무들을 다수 만들어 고령 노동자들을 고용했습니다. 또한 고령 직원들이 젊은 직원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거나, 그 노하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습니다.

임금 체계도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고령 직원에게 그들이 중장년 때 받던 임금을 그대로 지급한다면 기업의 임금 부담이 너무 커지고, 신규 채용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기업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줍니다. 특히 현재도 연공서열제가 절대적인 공무원 집단의 경우엔 임금 체계 조정이 정년 연장보다 선행돼야만 합니다.

정년 연장은 반드시 양적인 면(단순히 은퇴 시기를 늦추는 것)만 가리키진 않습니다. 생산성과 건강이 좋지 않은 고령 노동자를 계속해서 고용하는 건 기업의 입장에서도, 노동자 입장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겐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연금이나 사회적 지원의 양과 질을 증가시켜 주는 게 더 사회적으로 바람직합니다.

정년 연장의 기능을 더 넓게 바라볼 필요도 있습니다. 능력이 있고 여전히 생산성이 좋은 고령 노동자라면 계속 노동을 하는 게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겠죠. 그렇기에 정년 연장은 노동 공급 증가 외에도 다음의 두 기능을 가집니다.

  1. 분류(Sorting) : 정년 연장 시기에 같은 연령 군에서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들을 남겨 그들이 선택적으로 더 오래 노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
  2. 동기 제공(Incentive) : 기업에게 분류(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옵션) 권리가 생긴다면, (여전히 건강하고 더 노동할 의지가 있는)노동자가 정년 시기가 다가와도 계속해서 성실하게 노동할 유인이 생긴다.

결론적으로 정년 연장은 부작용도 많고, 그 부작용을 상쇄할 만큼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령화-저출생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현 상황에선 언젠가 해야만 하는 강제성이 있는 옵션입니다. 옵션을 더 효과적이고 건강하게 활용하기 위해선 각 사업체가 자신들에게 최적화된 방식의 정년 연장을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기다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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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년 연장이 논란인데...정년연장이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고령화 대비책으로 정년 연장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현대차와 기아 노조가 임금 및 단체협약의 핵심 쟁점으로 정년연장을 제기하기도 했죠. 대체적으로 노동자들은 정년연장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전역의 노동자들은 이에 반대중입니다.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연금도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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