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는 몇 가지 조건을 달긴 했지만 “기술은 정치적”이라고 했다. 기술의 설계 단계에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는 과정, 그 자체에 이미 정치적 성격이 내재된다는 의미다. 일부 기술은 전체적으로 특정 방향으로 편향돼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효율성’을 목적으로 개발된 1940년대 토마토 수확기계는 비용 절감 효과를 낳긴 했지만, 미국 내 농업 공동체는 사실상 붕괴되는 수순을 밟아야만 했다. 토마토 생산 농민의 수는 1960년대 초 약 4000명에서 1973년 600명으로 줄어든 반면, 토마토의 생산량은 크게 늘어났다. 그가 지적한 대로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 기술 그 자체에 녹아있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일부는 의도적으로 편향된 기술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의 관점에서 효율성을 위해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 향후 사회에 미칠 영향을 예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기술 설계 과정에서 배제된 대중은 다수가 기술의 수용자 입장에 서있다. 기술은 받아들여야 하는 무언가이지 거부해야 할 무엇으로 여겨지는 일은 드물다. 자칫 기술의 수용을 외면하게 되면, 시대에 뒤처지는 부류쯤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신화 속에서 대중들은 기술에 내재된 정치성을 바라보지 못한 채 수용을 강제당하기 일쑤다. 그 흐름 속에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내맡겨야 하는 것이 요즘의 기술 사회이다.

퓨리서치가 지난 4월 17일 발표한 ‘기술과 미래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선’ 보고서는 이런 맥락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을 위해 설계된 기술이냐에 따라 기술에 대한 수용 태도가 크게 엇갈린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기에 그렇다.

퓨리서치센터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50년 내 등장할 과학과 기술에 대해 미국인들은 비교적 담담하게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응답자의 59%가 향후 개발될 기술과 과학이 우리의 삶은 더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답변했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한 이들은 절반인 30%에 그쳤다.

반면, 기술이 사회에 미칠 효과가 명확히 제시될 경우 정반대의 답변이 나타났다. 조건으로 제시된 기술은 이미 현재 엔지니어들에 의해 혹은 과학자들에게 의해 설계되고 있거나 이미 개발이 완료된 경우들이다.

66%는 예비 부모가 더 똑똑하고 건강하며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를 낳기 위해 DNA를 변경할 수 있게 된다면 미래가 더 악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65%는 인간과 닮은 로봇이 건강이 취약한 환자와 노인들을 돌봐주는 도우미가 된다면, 삶은 더 나빠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63%는 사적, 상업적 드론이 미국 영공 대부분을 비행할 수 있도록 허가된다면 삶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53%는 대분의 사람들이 체내 삽입형 디바이스 또는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보여주는 디바이스를 착용하게 된다면 세상을 더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여성들이 이러한 디바이스가 확산되는 미래의 모습에 대해 더 걱정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반된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앤드류 핀버그는 기술권력의 탄생을 알렸다. 기술권력이란 말 그대로 기술을 개발하거나 활용함으로써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