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의 성공 비결을 몇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려는 기획을 하고, 어떤 키워드를 선정할 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정리할 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10개의 키워드를 먼저 정했고, 기억하기 좋게 10개 키워드의 영문 앞 첫 글자를 따면 의미가 통하게 만들고 싶었다. 여러 고민 끝에 ACUM DESIGN 이라는 단어를 만들 수 있었다. ACUM은 라틴어로 “뾰족한”이란 뜻이어서 “뾰족한 디자인”이라는 의미다.
첫 키워드 “진정성(authenticity)”으로 칼럼을 시작해서 ACUM DESIGN 순서대로 글을 써내려 갔다. 그런데 딱 중간인 다섯번째 키워드 “다각화(diversification)”를 쓰고나니 다음 키워드는 “이야기(Story)”가 되어야 했다. 콘텐츠 사업을 할 때 수익 다각화는 필수적이고 스토리는 사업 다각화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섯번째 키워드인 “감정적 연계(emotion)”의 순서를 맨 마지막으로 돌렸다. BTS 성공 비결을 총정리하는 키워드로 딱이었고, 첫 키워드였던 “진정성(authenticity)”과 수미쌍관으로 조응하는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BTS가 지금처럼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최정상급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팬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BTS와 아미컬쳐>를 쓴 이지행님은 BTS의 음악과 콘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BTS가 음악에 부여한 메시지를 체화하고 열렬히 전파하는 아미가 보여 주는 강력한 글로벌 결속력은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가 그 대상에 대해 신념에 가까운 열렬한 감정을 공유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라고 얘기한 바 있다. BTS의 무엇이 전세계 아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
#진심
첫 키워드 “진정성(authenticity)” 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의 BTS 팬들은 BTS의 음악을 표현할 때 ‘genuine”, “authentic”, “raw” 같은 단어를 즐겨 쓴다. 지금은 장르를 크게 넓혔지만 BTS 하면 여전히 떠오르는 정체성이 힙합이다. BTS는 ‘랩’ 그리고 ‘힙합’을 일회성 컨셉으로 활용하지 않고, 어떤 아이돌보다도 꾸준하고 깊이있게 파고 들었다. 언더그라운드 힙합 커뮤니티와 동료 아이돌 그룹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완성도를 높여가며 본인들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상업적일 수 밖에 없는 아이돌 그룹 활동으로는 미처 표출하기 어려운 힙합과 랩에 대한 갈급은 각자의 믹스테이프와 솔로 활동으로 채워 나갔다.
이러한 BTS의 음악에 대한 진심은 기존의 케이팝, 특히 아이돌 음악과의 중요한 변별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지나친 자기 증명과 소위 ‘스웨그(swag)’라 불리는 마초적 허세 내러티브를 가진 미국 주류 힙합과도 달랐다. 자신들의 음악에 자신들의 이야기와 진심을 솔직하게 담아낸 BTS의 음악은 아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 동인이었다.
#명확한 가치 지향
BTS는 데뷔할 때부터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억압, 불평등, 편견 등의 문제를 자기 세대의 눈으로 읽어내고 이로 인한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기부, 캠페인 등 함께 힘을 모아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행동에 나섰다. 이렇게 BTS가 음악과 행동을 통해 보여준 명확한 가치 지향은 전 세계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덕분에 BTS는 대중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는 흔치 않게 여러 차례 유엔 총회에서 연설과 공연을 하기도 했다.
BTS가 유엔 총회에 초대받을 수 있었던 것은 BTS가 자신의 음악과 행동을 통해 피력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대해 꼭 BTS 팬이 아니더라도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공명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BTS가 음악과 행동을 통해 전한 명확한 가치야 말로 팬들과 감정적 연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두 번째 계기였다.
#공감과 위로
BTS 음악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지만 음악 그 자체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BTS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내는 ‘보편성’이다. BTS는 그들의 음악에서 청춘과 성장의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껴안아 그것을 심오한 메시지와 세련된 음악 안에 녹여 냈다. BTS 음악은 케이팝 아이돌 음악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한’과 ‘슬픔’의 정서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가사는 매우 거친 동시에 서정적이며,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면모를 겸비하고 있다고 평가를 받는다.
BTS 음악은 청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또 청춘의 마음을 간직한 이들에게 이제는 부모가 되어 자식을 바라보며 자신의 젊음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모두 유사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BTS의 보편적 메시지와 음악이 가진 힘이 이렇게 나이와 성별, 국적과 인종이 다른 팬들을 묶어내고 있는지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BTS 음악은 팬들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그 파괴력이 거대하게 증폭된다. 아미는 BTS가 가진 ‘언더독’으로서의 설움, 그들의 성장과 고뇌 그리고 그들의 환희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감정적으로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임성희] BTS 성공키워드 #9 - New Tech. Orientation
[임성희] BTS 성공키워드 #8 - 'Global Orientation'
[임성희] BTS 성공키워드 #7 - InterC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