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펴본 BTS의 성공 키워드 네 개(진정성, 팬과의 연결, 남다름, 팬들의 참여)가 BTS 멤버들과 소속사 하이브가 어떻게 함께 노력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면 오늘 다룰 “다각화 (diversification)”라는 키워드는 오로지 하이브가 어떻게 사업을 잘 했는지에 대한 얘기다. 하이브는 BTS를 만들고, BTS의 모든 활동을 기획하고 상품화하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다. “다각화”라는 키워드는 하이브만의 독특한 성공 비결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이 세계적으로 음악산업이 축소되는 위기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이었다. 그 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은 한국이라는 제한적 시장에서만 소비되던 가요를 전세계인들이 함께 듣는 케이팝이라는 커다란 장르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다각화”라는 키워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수십년 간 음악산업이 겪은 흥망성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음악산업은 LP, CD, 카세트 같은 음반 유통 중심이었고 대부분의 수익을 음반 판매를 통해 만들어냈다. 1990년대 후반 냅스터, 소리바다 같은 음악 파일 공유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은 음반을 사지 않게 되었고, 음악 산업은 급격하게 축소되었다(아래 그림 참조). 결국 음반 제조 유통 사업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음악산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그 무게 중심이 디지털 음원 플랫폼과 음악을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로 이동하게 된다.
이러한 산업적 구조변동 과정에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시스템을 만든 회사가 바로 SM엔터테인먼트(이하 에스엠)다. 에스엠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한국의 연예기획사에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엔터테인먼트가 산업화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1995년 주식회사로 설립된 에스엠은 음반 중심의 음악산업이 급격하게 쪼그라드는 위기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2000년에는 연예기획사 최초로 코스닥 시장 등록에 성공했다. 에스엠이 성장 전략으로 택한 것이 바로 다각화였다. 에스엠은 소속 뮤지션들이 협소한 한국 시장을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리적 다각화를 시도했다. 또 소속 뮤지션의 음악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연관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다양한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케이팝의 글로벌 확장에 대해서는 따로 다룰 예정이니 여기서는 사업 다각화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
# 음악산업의 새로운 경제학을 만들다
- 팔던 것은 무료로, 부가 수익을 주수입으로 만들기
에스엠을 필두로 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은 음악을 음반에 담아 유료로 파는 비즈니스 모델이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했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각종 불법 음원 유통을 막을 수 없게 된데다 콘텐츠 자체가 과잉 생산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음악을 제작하고 유통해서는 더 이상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없게 산업 구조가 변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뮤직비디오와 음원을 무료로 유튜브에 공개하고 대신 콘서트, 연관 굿즈 상품 판매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자 했다. 기존에 유료로 판매하던 상품은 무료로 제공하되 부가 수익이라고 취급되던 상품을 통해 수익을 내는 새로운 경제학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은 소속 뮤지션의 가치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소속 뮤지션 출연시킬 수 있는 방송 콘텐츠 제작 사업, 굿즈를 판매하기 위한 매장, 카페와 식당 같은 외식사업, 패션과 뷰티 상품 제작 및 유통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달리 에스엠의 사업 다각화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점이다. 웹모바일 콘텐츠 제작, 홀로그램 뮤지컬 제작, 인공지능 기술 활용한 아바타 등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 케이팝 버티컬 SNS ‘바이럴(Vyrl)’, 모바일 노래방 서비스 ‘에브리싱(Everysing)’, 언택트 온라인 공연 플랫폼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 프라이빗 메신저 디어유(DearU)등 플랫폼 영역으로도 확장도 계속 시도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이 다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실패가 더 많았다. 하지만 기존 수익 모델이 다 무너진 상황에서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면서 소속 뮤지션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을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냈기 때문에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은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적극적으로 찾는 노력에 더해 기존 비즈니스 모델도 창의적으로 변형해 수익을 창출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반이다. 기획사들은 음악 감상을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음반에 일종의 수집품이라는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이 앨범을 사고 싶게 했다. 음반은 그 안에 그룹 멤버의 포토카드를 넣고 그룹 멤버들의 화보집처럼 만들어서 소장하고 싶은 가치를 부여했다.
# 트랜스미디어 전략에 기반한 사업 다각화
하이브 역시 그 전통 위에서 자사 특성을 살려 다양한 사업을 펼쳤다. 하이브가 다른 기획사 대비해서 차별화되는 포인트는 게임, 웹툰, 다큐/영화 등 다른 미디어에서 BTS를 IP로서 활용하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또 눈에 띄는 것이 온라인 한국어 교육 사업이다. 한국어로 노래하는 BTS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면서 '런 코리안 위드 방탄소년단(Learn! KOREAN with BTS)' 패키지를 만든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자신이 제공하는 제품과 경쟁 환경에 대해 '더 발전적으로 더 넓게' 생각했다. 기존 제품을 방어하는 대신 그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 창출의 기회를 찾았다. 과감하게 유료 상품과 그 상품에 끼워주던 부가적 상품의 위치를 바꿨고,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전세계에서 팬덤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변화가 심한 시대 기존 사업 모델을 지키려고 해서는 오히려 다 잃을 수 있고, 과감하게 확장을 시도하는 것, 그럴 수 있는 용기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의 사업 다각화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다.
# 스토리를 기반을 각 사업 간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기
그런데 기획사가 무한정 사업 다각화를 시도해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바로 소속 뮤지션을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팬덤의 비판적인 시각이다. 기획사의 사업은 대부분 팬들의 지갑을 열지 못하면 실패하기 때문에 팬덤으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을 적정 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사가 새로운 사업을 벌이면서도 팬덤의 비판을 피해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스토리다. 팬들이 비판하는 것은 음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업들이다. 가령 자신의 좋아하는 아이돌 멤버의 사진이 라면 포장지에 새겨져 있고, 계속 판촉행사에 돔원된다면 팬들은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 라면이 아이돌 멤버에게 중요한 추억이 담겨 있는 최애 라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기획사 입장에서는 사업에 관련성을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그 것을 엮어주는 것이 바로 스토리다.
기획사는 스토리와 유저 경험의 트랜스미디어 확장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나가곤 한다. 트랜스미디어란 콘텐츠가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 다른 미디어 공간으로 확장하는 현상을 의미한다(홍석경, 2020, 84). 그래서 웹툰, 게임, 캐릭터, 출판물, 예능 방송, 다큐멘터리,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스토리 월드를 만들게 되면 각각의 사업들이 의미있는 고객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되 무분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과 연결성을 생각해서 스토리로 묶어낼 수 있을 때 팬들의 비판에서 벗어나 유기적 사업 다각화가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기획사는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