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홍성욱은 “폴 바란의 아이디어, 릭 라이더의 이상, 테일러와 로버츠의 조직력과 추진력, BBN의 칸과 동료들이 만든 IMP, 클라인락의 이론, NWG의 첫 NCP 프로토콜, 칸과 서프의 TCP/IP 등 수많은 상이한 이론적 기술적 요소들이 서서히 종합되면서 형성됐다”고 말한다.(싸이버스페이스 오디쎄이 2001, P.40)

고규흔에 따르면 인터넷의 기질을 패킷 스위칭과 분산 네트워크로 압축한다면 폴 바란의 구상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그의 아이디어에서 인터넷의 패킷 스위칭과 분산 네트워크가 시작됐기에 그렇다. 홍성욱의 설명이든, 고규흔의 시각이든 폴 바란이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의 위상을 지닌 것만큼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폴 바란의 인터넷 이런 구상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표면적으로는 ‘소련이 미국 본토에 핵무기로 선제 공격을 감행하는 시나리오’에서 시작됐지만, 이를 구현하는 실행적 아이디어는 인공신경망 이론가 맥컬록 교수에서 얻어졌다고 한다. 고규흔은 폴 바란과 맥컬록 교수가 MIT에서 인연을 맺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들의 대화가 분산형 인터넷의 시발점을 구성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폴 바란의 애기를 들어보자.

“맥컬록 버전의 뇌야 말로 신뢰도 높은 통신 시스템을 디자인하는데 있어 내가 중요하게 여겼던 특질을 함유하고 있었죠.”

(출처 : 와이어드)

맥컬록 교수는 딥러닝으로 한창 유행을 타고 있는 인공신경망 이론의 최초 제안자다. 맥컬록 교수와 그의 제자 피츠는 인간의 두뇌 특히 뉴런을 논리적 요소로 끌어들이면서 그 처리 과정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 결과로 이듬해 ‘신경활동에 내재한 개념들의 논리적 계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이들은 이 논문에서 신경망을 ‘이진 스위칭’ 소자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로 모형화했다.

다시 돌아가면 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국방당국의 소련 핵 공격 대응 프로그램으로부터 구상됐지만 그 실현은 맥컬록 교수의 인공신경망 아이디어에 빚지고 있다. 인터넷은 뉴런의 확장태이며 뉴런의 개념화(고규흔의 표현)이기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의 진화는 생명체의 진화 방식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


폴 바란의 1964년 논문 ‘On Distributed communications’

관련 서적 : 제프리 스티벨 <구글 이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