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희] 봉준호의 세가지 탁월한 선택

임성희의 “창의로운 K-엔터 현장” #3 - 봉준호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시즌이다. 영화제는 그동안 궁금했던 감독, 배우들의 근황과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반가운 얼굴들 중에서는 봉준호 감독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은 지난 9월 2021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아서 주목받았다.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는 베네치아, 깐느, 베를린 영화제를 꼽는다(아카데미는?). 각 영화제에서는 그 해 가장 주목할만한 영화와 배우 등을 뽑아 시상을 한다. 그 심사위원이 된다는 건 영화판에서 세계적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징표다. 심사위원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영예로운 자리다. 그러니 봉준호 감독은 지금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라고 공인받은 셈이다.

그를 지금의 자리로 올려준 영화는 두말할 나위 없이 "기생충"이다. 2019년 한국영화 최초로 깐느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국내 영화관에서는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미국의 로컬 영화제”이지만 전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차지했다. 영어가 아닌 언어로 제작된 영화로 아카데미상 역사 상 처음으로 작품상을 수상함으로써 더 이상 아카데미가 “로컬 영화제”가 아니게 만들어 준, 아카데미의 역사를 새로 쓴 영화가 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20년 만에 세계 영화계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게 됐을까? 그의 예술적 자질과 위대함에 대해서는 여러 권의 책이 나와 있을 정도니 더 보탤 것이 없고, 이 글에서는 산업적 관점에서 봉준호 감독을 위대하게 만든 세 가지 탁월한 선택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그의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보자. 봉준호 감독은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는데 흥행에는 실패했다. 보통 데뷔작이 폭망하면 다음 기회를 얻기 쉽지 않지만 차승재라는 눈밝은 제작자 덕분에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영화는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다음 영화 "괴물(2006)"은 1,300만 관객으로 흥행 대박과 함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전형을 만들었다'는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다음 영화  "마더(2009)"는 300만 관객으로 평범한 흥행 실적이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 과감하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다

10년 노력 끝에 천만 감독으로서 비로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펼칠 수 있게 된 봉준호 감독은 과감하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영화 제작에 나선다. 이 선택이 지금의 봉준호를 있게 한 첫 번째 탁월한 선택이다. 영화는 의외로 문화적 장벽이 높다. 오랜 기간 전세계 영화 시장을 지배해 온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하고 나면 국경을 넘어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는 가물에 콩나듯 한다. 그래서 아무리 천만 감독이라도 로컬의 한계를 뛰어넘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선택을 선뜻 내리기 어렵다(생각해보라, 천만 영화가 26편이나 되지만 글로벌 시장에 도전한 감독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하지만 봉준호는 크리스 에반스와 틸다 스윈튼 등 할리우드 배우를 캐스팅하고 영어를 사용한 영화 "설국열차(2013)"로 글로벌(이라고 쓰고 실제로는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배급사였던 와인스틴 컴퍼니와의 갈등 등으로 실적은 시원치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영화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아 봉준호라는 이름을 널리 미국 시장에 널리 알린 영화가 된다.

#2 선도적으로 넷플릭스와 협력을 선택하다

봉준호 감독은 다음 영화  "옥자(2017)"에서 더 과감한 결정을 한다. 넷플릭스 투자를 받고 제작사로 지금은 "미나리" 제작사로 유명해진 플랜B 엔터테인먼트를 선택한다. 이 결정은 매우 과감하고 논쟁적인 선택이었다. 넷플릭스 투자를 받으면 국내 멀티플렉스에서 개봉을 하지 못할 것이 불보듯 뻔했지만 과감하게 넷플릭스와 협업했고 국내 극장 관걕 30만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봉준호의 글로벌 지명도는 크게 올라갔다. 이 결정이 두 번째 탁월한 선택이다.

사실 "옥자" 이후 넷플릭스와 협력한 한국 영화는 2020년 "사냥의 시간" 이었다. 그마저도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극장 개봉이 어려워지자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한국 영화판이 보수적이다. 그런데 봉준호 감독은 국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라도 과감하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플랫폼과 협업을 시도했다. 봉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극장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 만을 생각해왔던 영화 감독에게 넷플릭스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므로 한 번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 관점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넷플릭스 협업을 백안시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자신의 영화를 관객과 만나게 해줄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과감히 도전한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3 용감하게 초심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다

"옥자" 다음 영화가 바로 "기생충"이다. 그런데 이 선택이 참으로 남달랐다. 5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물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제작비와 비교하면 독립영화 수준이긴 하다)로 할리우드 방식으로 제작했던 두 전작과 달리 외국 배우 없이 한국 배우만 출연시켜 한국어로 제작했다. 제작비도 전작들의 20~30% 수준이었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먹힌 거 같다”고 겸손한 인터뷰를 했지만 이 결정이 바로 봉준호 감독의 세 번째이자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앞 선 두 편의 영화에 대한 영화판의 평가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서 풍족하게 할리우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10년 전 방식으로 돌아갔다. 두 번의 할리우드식 제작 방식을 경험하면서 그 방식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한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미국 배급사가 영화 편집에 과도하게 개입하려고 해서 막판까지 갈등을 겪었던 "설국열차",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는 바람에 영화관에서 관객을 만나지 못했던 "옥자"의 교훈이 "기생충" 제작 방식에 반영되었다. “네온”이라는 작지만 감독을 존중하는 미국 독립 배급사를 선택한 것도 봉준호 감독의  이런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 선택이다. 퇴보한 게 아니냐는 외부의 비아냥에도 자신만의 방식을 과감하게 선택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두었다.

봉준호 감독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세 가지 탁월한 선택을 요약하면, 첫번째 국내 시장의 유명세를 뒤로 하고 과감하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선택, 두번째 한국 멀티플렉스와의 관계 악화를 각오하고 글로벌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적 방식인 넷플릭스 협업을 선택한 점, 마지막으로 남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과 배급 방식을 설계해 밀어부친 선택, 이 세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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