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희] 창의로운 K-엔터 현장 #1

오징어게임, 미국에서도 인기!

드디어 K-드라마가 미국 넷플릭스 시청자가 가장 많이 본 콘텐츠 자리에 올랐다. 그 주인공은 바로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이용 데이터 분석 기관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9월 21~22일 “오징어게임”이 미국 등 6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 미국에서 최고 성적은 “스위트홈”의 3위 기록이었다.

K POP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연재를 구상하던 어느 날 , BTS의 “Butter”가 빌보드 핫100 챠트 1위를 탈환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9주 연속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지키다가 내려온지 한 달 만에 미국 래퍼 메건 디 스탤리언이 피처링한 리믹스 버전 출시에 힘입어 다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곧 이어 블랙핑크가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전세계에서 제일 많은 유튜브 채널 구독자를 가진 대중 가수가 되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요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이런 신나는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봉준호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장이 됐다는 소식도, 세계적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이 한국 드라마 OST를 클래식으로 편곡한 음반을 발매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이런 뉴스들이 '어떻게 하나의 범주로 묶이지'하며 의아해 하실 분도 있겠다. 범주화의 근거는 바로 “한국”, 시쳇말로 “K”다. 본능적으로 이런 범주화를 하는 나를 국뽕에 사로잡혀 있다고 놀려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필자에겐 남다른 감회가 있다. 과거를 거슬러 한 세대가 바뀐다는 30년 기준에도 못미치는 1996년 “문화제국주의”라는 개념 틀로 서구, 특히 미국과 일본의 대중문화에 의해 한국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 지배당할 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논문을 썼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뉴스가 절로 어깨를 으쓱이게 하는, 유난히 신나고 반가운 소식이다. 동시에 “한국(K) 대중문화"의 우수성에 감탄하게 된다. 그렇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에는(라떼는ㅠㅠ) 엔터테인먼트라는 용어보다 대중문화라고 불렀다.

K-엔터테인먼트와 창의성

필자는 앞으로 씨로켓을 통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한국의 콘텐츠, 이벤트, 인물을 선정해서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탐구해 보려고 한다. 그런데 답이 뻔하고 또 애써 답을 구해봐야 써먹을 데도 없는 이런 탐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 같다.(물론 환청이겠지만...) 이런 지적을 하는 분들은 '어떤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걸 만든 사람이 “창의적”이기 때문이고 그 창의성이라는 것은 복제하는 순간 창의적이지 않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 창의적이었는지 분석해봐야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주장할 것으로 짐작된다. 일리있는 이야기같지만 정말 그럴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창의성을 가장 잘 정의한 학자는 (발음도 어려운) 미하일 칙센트미하이라는 학자다. 그는 창의성을 “특정 전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장의적 성과물에서 찾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정의했다. 너무도 다양할 수 있는 창의성을 애써 정의하기 보다는 '특정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어떤 것이 공유하고 있는 특성'이라고 퉁쳤다. 내가 이 정의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각 분야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 역동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창의성의 속성을 잘 짚었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우리는 지금 여기의 엔터테인먼트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 콘텐츠, 이벤트에 대해 그 평가의 근저에 어떤 “기준”이 깔려 있는지 “메타”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즉 특정 현장 전문가 집단이 공유하는 “현장의 규칙과 가치체계”는 무엇이고, 그들이 “선택하고 선호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창의성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을 알면 엔터테인먼트 현장에서 일하고 싶거나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선택과 선호의 기준”에 맞게 나를, 내 작품을 정렬하여 창의적이라고 평가받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이 칼럼을 쓰고자 하는 이유이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서 엔터테인먼트 현장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혹은 엔터테인먼트 현장에 뛰어들어 자신의 창의성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창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 이정표를 세워주고 싶다.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글로벌 영화 판에서 인정 받을 수 있었을까? 꼭 영화판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봉준호 감독에게 따라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나만의 답을 해보고 싶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없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야무진 꿈을 꾸기에 앞서 이 칼럼을 쓰기에 내가 적합한 사람일지 계속 되물어 보았다. 열심히 고심해본 결과 이 칼럼을 쓸 세 가지 이유를 찾아냈다.

창의성 칼럼을 쓰는 이유 세가지

나는 엔터테인먼트를 대중문화라고 부르던 '라떼 시절'부터 대중문화를 좋아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랑하는 엔터테인먼트 현장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싶어 뉴스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고, 책도 찾아 읽으면서 열심히 공부해왔다. 하지만 남의 생각을 따라 읽기만 해서는 깊이가 생기지 않는다. 가장 좋은 공부법은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를 계속 북돋고 긴장하게 만들수 있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 칼럼을 쓰는 첫번째 이유다.

두 번째, 내가 엔터테인먼트 현장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 그간 엔터테인먼트 현장을 제법 다양하게 거쳤다. 국내 최초 모바일 비디오 서비스 “호핀”, K-POP 팬 플랫폼을 지향했던 “바이럴”과 이 플랫폼을 채우기 위해 제작했던 다양한 모바일 콘텐츠,  그리고 인공지능, 5G 등 신기술과 콘텐츠를 결합했던 “온클래식” 프로젝트 등, 그 과정에서 겪고 배운 다양한 경험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현장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 굳이 이 칼럼을 찾아 읽을 정도로 조언이나 인사이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얘기들을 풀어놓고 싶다. 이 작업이 잘 풀려서 엔터테인먼트 현장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성공방정식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엔터테인먼트를 대중문화라고 부르던 시절, '대중문화에는 창의성이 없다'고들 했었다.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가는 상품일 뿐, 가령 뒤샹의 변기처럼, 쇤베르크의 무조 음악처럼 대중의 취향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고급 문화라고 분류되는 영역이야말로 구닥다리의 박제화된 기존 가치가 답습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칼럼에서는 역동적으로 변화해가는 대중의 입맛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엔터테인먼트 현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콘텐츠와 이벤트, 사람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현장의 창의성에 어떤 규칙이 숨어 있고, 어떤 특질을 갖고 있는지 탐구해 볼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여러분들과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필자소개> 임성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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