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국민 소통과 셀럽의 활용: 파우치 박사의 미디어 블리츠(Media Blitz)
한국에 정은경 본부장, 미국에는 파우치 박사!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의 피해를 가장 크게 받고 있는 미국에서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목소리는 (적어도 국민의 절반에게는) 트럼프의 목소리가 아니다. "파우치 박사(Dr. Fauci)"라고 불리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의 목소리다.
현재 미국에서 파우치 박사는 한국의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물론 미국의 질병관리본부인 CDC의 소장 로버트 레드필드 박사도 있지만, 2018년 부터 CDC의 소장이 된 레드필드와 달리 파우치 박사는 미국이 HIV 바이러스에 시달리던 1984년 부터 NIAID를 이끌어 온 베테랑이다.
요즘은 거의 매일 백악관을 드나들며 트럼프에게 조언을 하고 있고, 트럼프가 기자회견으로 거짓 정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조심스럽게 틀린 내용을 수정하며 코로나 난국을 헤쳐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트럼프의 틀린 말을 수정한다고 해서 트럼프의 극우 지지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파우치 박사의 소셜미디어 챙기기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일하고 있다는 정은경 본부장과 마찬가지로 파우치 박사 역시 과연 쉬는 시간이 있을까 싶을 만큼 바쁘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최근 그가 특이한 행보를 하는 게 눈에 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 소셜미디어의 유명 채널에 출연하기 시작한 것. 언론 매체와 짧게 2,3분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다. 15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길게 독점 인터뷰를 하면서 Q&A 세션을 갖는다.
대표적인 인터뷰만 뽑아봐도 이렇게 많다. 전부 최근에 녹화, 녹음한 것들이다:
• 닥터 마이크 Doctor Mike 5.41M subscribers [보기]
• 필립 드프랭코 Philip DeFranco 6.41M subscribers [보기]
• NBA선수 스티븐 커리 Stephen Curry 1.13M subscribers [보기]
• NBA (스티븐 커리 인터뷰) 13.7M subscribers [보기]
• 파돈 마이 테이크 Pardon My Take 122K subscribers [보기]
• 쇼타임 데수스 & 머로 DESUS & MERO on SHOWTIME 194K subscribers [보기]
왜 바쁜 시간 쪼개 소셜미디어에 출연할까?
엄청난 양이다. 이를 두고 파우치 박사가 미디어 블리츠(media blitz: 많은 양의 정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일시에 쏟아내는 것)를 벌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파우치 박사는 왜 가장 바쁜 순간에 이런 소셜미디어 출연을 늘렸을까?
바로 젊은층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전통적인 뉴스와 미디어 소비가 윗세대 만큼 많지 않다. 따라서 TV, 라디오, 신문 등 전통적인 매체가 아무리 기사를 쏟아내고, 백악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퍼뜨려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현재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고 “커브를 낮추는” 작업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다. “코로나19는 젊은 사람들은 걸리지 않거나, 걸려도 쉽게 지나간다”는 속설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방역대책이 먹히지 않는 상황.
유튜브가 중요한 이유
파우치 박사가 소셜미디어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전통적인 매체를 떠나 타겟 오디언스가 있는 채널을 직접 찾아가겠다는 것.
위의 링크들을 보면 알겠지만, 페이스북과 팟캐스트도 포함되어 있지만 절대 다수는 유튜브 채널들이다. 소셜미디어 전문가인 데이빗 크레이그는 “파우치가 (전염병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겠다고 작정을 했다면 유튜브가 최고의 플랫폼”이라고 단언한다.
"그럼 파우치 박사는 각 채널에 출연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기본적으로는 같은 내용을 전달한다. 소셜미디어의 특성상 각 채널의 오디언스는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채널은 성격이 다르고 오디언스의 관심사도 다르다. 따라서 채널의 진행자들의 질문은 조금씩 다르고 파우치 박사가 각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채널에 특화된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유튜브 채널 정체성과 최적화된 콘텐츠
예를 들어 미국의 젊은층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코미디 센트럴의 The Daily Show는 다른 많은 심야 토크쇼와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녹화가 중단된 상태다. 따라서 진행자인 트레버 노아는 다른 토크쇼 호스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에서 녹화를 해서 방송을 하고 있고 따라서 제목도 "The Daily Social Distancing(사회적 거리두기) Show”라고 바꿔서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요즘은 집 안에 머무는 상황을 자조적으로 묘사하거나, 평소 방송내용 처럼 최신 트럼프 관련 뉴스에 코멘트를 하는 식의 내용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난 3월 26일 방송분을 보면 13분 동안 파우치 박사와 독점 인터뷰를 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 (가령 "배달 받은 물건을 통해 전염될 수 있는가”)과 젊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내용(“젊은 사람들은 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을 물어본다. 특히 트레버 노아가 거주하고, The Daily Show가 녹화되는 뉴욕시의 상황을 뉴요커의 입장에서 뉴욕의 상황을 물어본다.
무엇보다 The Daily Show의 특징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은 코미디쇼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부조직의 일원인 파우치 박사는 이 쇼에 나오기가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등장했고, 트레버 노아는 평소처럼 정부에 대한 공격을 해서 파우치 박사를 난감하게 만들기 보다는 대국민 메시지 전달에 주력했다. 다만 맨 마지막에는 현재 연방정부가 각 주정부 사이의 갈등 부분을 우회적으로 질문해서 파우치 박사가 해명할 기회를 주었다. 이런 부분은 다른 채널에서 볼 수 없는 트레버 노아의 채널 만의 개성이다.
그리고 각 채널은 이렇게 자신만의 특징과 화법을 사용해 파우치 박사와 대담을 진행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낸다. 많은 홍보 콘텐츠가 실패하는 부분이 바로 이렇게 '채널 고유의 특징을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파우치 박사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하는 인터뷰이기 때문에 많은 녹화가 파우치의 사무실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화질과 음질은 떨어지고 녹화, 녹음의 품질이 좋지 않은 편이다. 가령, 스티븐 커리와의 인터뷰를 보면 스티븐 커리가 화상 통화를 시작하는 장면부터 시작하고, 연결상태가 고르지 않아서 미안하다는 말부터 한다.
참고로 파우치 박사는 키가 작은 편이지만 고등학교 때 농구부 주장을 했고, 79세의 나이에도 달리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스티븐 커리와 화상통화가 연결되자 마자 커리의 애칭을 사용해 “하이, 스테프(Steph)!”라고 인사를 함으로써 커리와의 거리를 좁히고 친근하게 대화를 시작한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화면과 음향 퀄리티 보다 중요한 것이 가공되거나 연출되지 않은 Authenticity이고, 출연자의 실력은 그의 순발력으로 증명된다. 그런데 현재의 자리에서 35년 이상 같은 일을 해온 파우치 박사는 채널의 진행자들이 궁금해하는 모든 것들을, 비서를 동원하거나 자료를 뒤지지 않고 바로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정부나 공공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특히 젊은 세대를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Best Practice가 현재 파우치 박사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