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과 은행의 연결고리 된 '양자 컴퓨터'

지난 7월 12일, IBM과 트루이스트 파이낸셜(Truist Financial)이 협업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트루이스트 파이낸셜의 은행 업무와 IBM의 양자 컴퓨터가 활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AI, 자동화 기술이 적용된 금융 거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은행의 양자 컴퓨터 도입이라니, 독특해 보이지만 사실 그리 특별한 결정은 아닙니다. 이미 양자 컴퓨터는 핀테크 산업의 키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루이스트 파이낸셜의 목표

트루이스트 파이낸셜은 미국 5위권의 초대형 은행 지주회사입니다. 2019년 12월, (자본금 기준) 당시 미국 11위 은행인 BB&T와 12위 은행인 선트러스트(SunTrust)가 합병해 탄생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손에 꼽을만한 규모의 은행 합병이었습니다. 여담으로 트루이스트(Truist)라는 사명은 진실을 뜻하는 True에 ‘-을 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ist를 붙여서 만든 말입니다. ‘진실을 행하는 사람’ 정도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타주의자’를 뜻하는 Altruist에서 가져왔다고도 하네요. 이 사명은 ‘최악의 리브랜딩’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트루이스트는 조지아주 최고 인기 스포츠팀 중 하나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즈의 홈구장 명명권을 보유 중이기도 합니다. ⓒ 트위터 @Braves

트루이스트는 최근 ‘지역은행’이란 이미지를 탈피하려 노력 중입니다. BB&T와 선트러스트는 각각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조지아주라는 미국 동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은행이었습니다. 따라서 트루이스트 역시 동남부 지역은행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트루이스트는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 파고 등 세계적인 은행들이 있는 금융 중심지 샬럿으로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이후 중부와 서부 위주로 신규 지점을 내고 각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금리의 계좌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SVB 사태와 핀테크의 중요성

SVB 파산 사태가 발생한 3월 초, 트루이스트 역시 큰 폭의 주가 하락을 경험했습니다. 아직도 회복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트루이스트는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유동성 불안감으로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후폭풍으로 트루이스트는 주가 폭락을 경험한 건 물론, 뱅크런 위협까지 겪었습니다. 물론 뱅크런 위협은 기우일 뿐이었지만, 이 경험은 트루이스트에게 크게 두 가지 교훈을 줬을 듯합니다.

첫째 교훈은 더 빠르고 넓은 확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SVB 사태는 특히 지역은행으로 분류되는 은행들에게 큰 타격을 줬는데요. ABC는 그 이유에 대해 분석했는데요. 지역은행이 10년 만기 미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 장기 증권에 너무 많은 투자 비중을 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해부터 미국 연준(Fed)가 급속도로 금리를 인상하자 이 같은 장기 증권의 매각이 어려워졌고, 당장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 장기 증권을 손해를 보면서라도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소규모 예금주들은 안정성을 위해 지역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초대형 규모의 전국구, 또는 글로벌 은행에 예금을 맡기게 됐습니다.

둘째는 핀테크 역량 강화입니다. ‘SVB 파산 사태는 디지털 금융 시대라서 발생했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SVB의 유동성이 불안하다는 루머가 나오자 수많은 예금자가 인터넷 뱅킹을 통해 초단시간에 예금을 인출하면서, 제대로 된 대응을 취할 시간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발생한 사태이기 때문입니다. SVB 사태는 핀테크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보였습니다.

핀테크에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있음이 드러나자, (역설적일 수 있지만) 핀테크 발전이 시급해졌습니다. 실시간으로 보안 리스크를 해소하고, 부정적인 외부 사건·사고에 대처할 줄 아는 핀테크가 필요해진 것입니다.

양자 컴퓨터와 금융

핀테크 역량 강화를 위해서 트루이스트는 IBM의 기업 협력 프로그램인 ‘IBM 퀀텀 액셀러레이터(Quantum Accelerator)’에 참여합니다.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IBM의 양자 컴퓨터 서비스와 기술력이 트루이스트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IBM Research Blog

금융은 데이터 활용과 수학이 특히나 중요한 영역입니다. 파생상품 옵션의 시세 등 기초적인 것 같은 데이터도 쉽게 공개되지 않고, 간단한 거래를 하기 위해서도 어려운 수학, 통계학 지식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데이터와 수학의 중요성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데이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만큼 연산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양자 컴퓨터는 이 데이터 처리와 복잡한 연산에 매우 특화됐습니다. IBM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금융 서비스를 양자 컴퓨터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밝히기도 했습니다.

양자 컴퓨터가 활용되는 주요 분야로는 ▲시장 예측 ▲금융 리스크 평가 ▲신용 분석 ▲투자자 행동 패턴 분석 프로파일링 ▲트레이딩 최적화 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루이스트와 IBM이 연결된 이유

따라서 트루이스트의 양자 컴퓨터 도입은 그렇게 특별한 결정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대형 은행에 비하면 조금 늦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The Quantum Insider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기준 11개 금융사가 양자 컴퓨터에 투자 중이었습니다. 예컨대 골드만삭스는 자체적으로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했습니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무작위 추출된 난수를 이용해 다중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불확실한 함수의 값의 근사치를 계산하는 방법)의 단점인 ▲긴 시간 소요 ▲데이터의 확률분포 계산의 어려움 등을 보완하기 위함입니다. JP모건은 양자 컴퓨터와 AI의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사용해 수만, 수십만 페이지의 데이터를 요약하는 기술을 시연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트루이스트와 IBM은 서로 다음과 같은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 트루이스트가 IBM과 손잡은 것은, 경쟁자들에 비해 ‘다소 늦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릅니다. IBM은 구글과 함께 양자 컴퓨터 분야의 선두주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만큼 계약 조건도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에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트루이스트에겐 IBM이 최선의 파트너였을 듯합니다.
  • 한편, 현재 양자 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다소 과장됐다고 평가받습니다. 금융권이 요구하는 만큼의 연산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계산에 오류가 많기도 합니다. 이는 IBM 입장에서도 은행 등 금융권과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양자 컴퓨터와 AI 프로그램 학습을 위해선 금융 데이터와 투자 자금이 충분히 필요하기 때문에, 트루이스트와의 협력을 통해 IBM은 필요한 만큼의 데이터와 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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