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ad
광고 ad
제품도 없는데 230억달러 몰렸다…AI 천재들에게 베팅하는 실리콘밸리

제품도 없는데 230억달러 몰렸다…AI 천재들에게 베팅하는 실리콘밸리

제품보다 연구자에 투자한다…AI 네오랩 열풍의 명암

🧠 아이디어 하나에 수십억달러

  • 벤처캐피털(VC)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조르주 도리오는 자신의 일을 '사람과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약 80년이 지난 지금, 실리콘밸리의 AI 투자자들이 이 원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픈AI 등 유명 AI 기업에서 일하던 스타 연구자들이 회사를 떠나 독립 연구소를 설립하면 구체적인 제품이나 사업계획이 없어도 수십억달러의 투자금이 몰리고 있습니다.
  • 이런 신생 AI 연구소를 '네오랩(Neolab)'이라고 부릅니다. 벤처캐피털 래디컬벤처스에 따르면 2024년 6월부터 약 2년 동안 29개의 네오랩이 설립됐습니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 집계 기준 이들이 유치한 자금은 총 230억달러에 달합니다. 지난 10월 5일 공개된 리플렉션AI의 '빔(Beam)'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서구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운 중국 AI 모델에 맞설 미국의 대안으로 주목받았습니다.
  • 투자자들이 사는 것은 현재의 실적이 아닙니다. 뛰어난 연구자들이 기존 AI 기업과 다른 방식으로 차세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금이 실제 제품과 사업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 투자는 넘치는데 제품은 부족

  • 이코노미스트가 29개 네오랩의 공개 발표를 분석한 결과, 상용 제품을 출시한 기업은 전체의 35% 미만이었습니다. 개발자들이 다른 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는 코드나 모델을 공개한 곳은 절반을 조금 넘었지만, 상당수는 실제 사업보다는 연구 방향을 보여주기 위한 시연용 결과물이었습니다. 총 230억달러가 투입됐음에도 시장에서 판매할 제품을 내놓은 곳은 3분의 1도 되지 않는 셈입니다.
  • 대표적인 사례가 오픈AI 공동창업자 일리야 수츠케버가 2024년 설립한 세이프 슈퍼인텔리전스(SSI)입니다. SSI의 기업가치는 최근 320억달러로 평가됐으며 누적 투자유치액은 80억달러에 달합니다. 여기에는 엔비디아가 추가로 투자한 50억달러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러나 SSI는 아직 상용 제품을 출시하지 않았습니다.
  • 수츠케버는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에 도달하기 전까지 제품을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7월에는 대규모 연구를 확대할 만한 성과를 확보했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투자자들은 아직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려운 연구 성과와 수츠케버의 역량에 거액을 베팅하고 있는 셈입니다.

🚀 매출 2억달러도 부족한 시장

  • 모든 네오랩이 제품 개발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픈AI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미라 무라티가 설립한 싱킹머신스랩(TML)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사업화에 나섰습니다. 이 회사는 첫 투자 라운드에서 20억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20억달러를 인정받았습니다.
  • TML은 개발자들이 다른 기업의 공개 가중치 AI 모델을 맞춤형으로 조정할 수 있는 '팅커(Tinker)'를 출시했습니다. 이어 자체 AI 모델 '잉클링(Inkling)'도 공개했습니다. 회사는 잉클링이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인다고 설명했지만, 모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인 것은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실제로 잉클링은 AI 모델 거래 플랫폼 오픈라우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모델 상위 20위에 들지 못했습니다.
  • 그럼에도 TML의 연환산 매출은 2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른 네오랩과 비교하면 상당한 성과지만, 회사가 새로운 투자유치 과정에서 목표로 하는 기업가치는 약 400억달러입니다. 연환산 매출의 약 200배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투자자들이 현재의 수익보다 미래 성장 가능성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보여줍니다.

💡 작은 연구소의 반격

  • 흥미로운 것은 막대한 투자금을 확보한 기업이 반드시 시장에서 앞서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픈라우터의 인기 모델 상위 20위에 오른 네오랩 제품은 단 하나, 타입세이프(Typesafe)의 '제브(Jev)'였습니다. 수십억달러를 투자받은 유명 연구소들이 고전하는 사이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이 실용적인 기술로 존재감을 드러낸 겁니다.
  • 제브는 일반적인 챗봇처럼 직접 답변을 생성하는 모델이 아닙니다. 사용자의 요청을 분석해 어떤 AI 모델이 그 일을 가장 효율적으로 처리할지 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해 여러 AI 모델 사이에서 업무를 배분하는 교통정리 담당자입니다. 모든 작업을 비싼 최고성능 모델에 맡기는 대신 작업에 적합한 모델을 선택해 전체 AI 사용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타입세이프는 제브 출시 전까지 약 4000만달러만 투자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9월 제품 출시 이후 시장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달 추가로 8억7000만달러를 유치했습니다. 다만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제브 출시 이후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는 경쟁 제품들이 빠르게 등장하면서 기술적 우위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을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 엔비디아가 쥔 또 하나의 열쇠

  • 네오랩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은 연구자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AI 모델을 개발하려면 막대한 컴퓨팅 자원이 필요합니다. 특히 최첨단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한 고성능 GPU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경쟁 요소입니다. 기존 대형 AI 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신생 연구소에는 자금만큼이나 연산자원 확보가 절실합니다.
  • 이 때문에 많은 네오랩이 엔비디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래디컬벤처스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지금까지 신생 AI 모델 개발기업에 32건의 투자를 집행했습니다. 단일 기업이나 VC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엔비디아는 투자금뿐 아니라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핵심 반도체와 컴퓨팅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기도 합니다.
  • 미국의 저비용 공개 가중치 모델로 주목받은 리플렉션AI는 이미 엔비디아로부터 8억달러를 투자받았으며 추가 대규모 투자나 인수 가능성까지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경쟁사 AMD도 지난 9월 AI 연구자 페이페이 리가 설립한 월드랩스(World Labs)를 80억달러에 인수했습니다. 네오랩은 자금과 연산자원을 확보하고, 반도체 기업은 차세대 AI 기술을 개발할 유망 고객과 협력 관계를 선점하는 구조입니다.

⚖️ AI 투자에도 필요한 '성적표'

  • 네오랩 투자자들의 기대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역시 연구 성과를 상용 제품으로 전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존 모델과 다른 접근법을 연구하는 신생 기업이라면 충분한 시간과 자금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당수 네오랩이 실패할 가능성도 투자자들은 감수해야 합니다.
  • 문제는 그동안의 진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입니다. 바이오테크 산업에서도 VC들은 오랫동안 수익이 나지 않는 기업에 투자하지만, 이 분야에는 임상시험처럼 비교적 명확한 개발 단계가 있습니다. 초기 임상에서 성과가 확인되면 후속 투자를 유치할 근거가 생깁니다. 반면 네오랩에는 아직 이런 공통의 평가 기준이 자리 잡지 않았고, 투자자들도 이를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 AI 연구소가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초기 투자자들은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네오랩의 수가 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투자 규모에 걸맞은 구체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네오랩 시장에서 가장 비싼 자산은 AI 모델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지는 연구자의 명성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명성이 실제 기술과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Newsletter
디지털 시대, 새로운 정보를 받아보세요!

더코어 에디터 (미라클랩 매니저)

더코어 스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