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번째 BTS 성공 키워드는 “스토리”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찾아 보는 이유도 거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제품이라도 흥미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으면 다르다고 느낀다. 그래서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제품에 재미난 이야기를 담고 싶어한다. 하인즈(Heinz)는 우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화성 토양과 흡사한 조건에서 재배한 토마토로 ‘화성 에디션(Marz Edition)’ 케찹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입혔다. 감자칩 브랜드 레이스(Ray’s)는 미식축구 경기장의 흙을 퍼와서 재배한 감자로 팀 로고가 새겨진 감자칩을 만들어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이처럼 브랜드들은 자신의 제품에 이야기를 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팬덤의 씨앗, 이야기와 세계관
팬들의 관심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아이돌들도 자신들만의 이야기와 세계관을 갖고 싶어한다. 아이돌 그룹의 세계관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경쟁이 치열한 아이돌 세계에서 팬들의 흥미를 유발하여 관심을 갖게 하는 씨앗으로써 역할하고, 팬들에게 ‘우리끼리’ 아는 이야기를 제공해 줌으로써 소속감을 강화하는 차별화 장치로서 역할한다. 그래서 기획사들은 아이돌 그룹을 만들 때 그들에게 잘 어울리는 독창적인 세계관과 독보적인 이야기를 찾기 위해 애쓴다.
가령 SM은 “엑소”를 만들면서 멤버들을 태양계 외행성 엑소플래닛(exoplanet)에서 지구로 온 외계인들로 설정하고, 기억과 초능력도 잃은 채 지구에 왔지만 힘을 되찾아 악당을 물리친다는 스토리를 부여했다. 이런 판타지적인 설정은 데뷔 초기 팬들의 관심을 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기 쉽지 않아서 결국은 유야무야 되어 버렸다. 그래서 기획사들은 팬들에게 차별적으로 다가가면서도 지속 가능한 세계관과 스토리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 미국 팬덤의 씨앗이 된 흙수저 아이돌 BTS의 언더독 스토리
BTS는 애써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다른 케이팝 아이돌과는 달리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힙합 아이돌”이라는 모순적인 컨셉으로 데뷔하면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들의 비아냥, 힙합 문화와 아이돌 문화 간의 충돌 등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졌다. 또 대형 기획사가 아닌 중소 기획사 소속 '흙수저 아이돌'이 겪어야 하는 설움과 또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기울인 각고의 노력 역시 BTS에게 풍부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줬다. BTS 멤버들은 힙합 뮤지션 답게 자신들이 느낀 불안과 걱정, 그리고 설움을 노래 가사에 그대로 담았고,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팬들에게 전해졌다.
대형 기획사 출신 아이돌이 예능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점점 팬덤을 넓혀 가는데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못했던 BTS는 자신들의 일상과 무대 뒤의 모습을 유튜브에 꾸준히 올리는 것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 했다. 유튜브나 포털에 올린 그들의 자체 콘텐츠에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담길 수 없는 순간순간의 불안과 각오가 스쳐 지나갔다. 방송의 대안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자체 콘텐츠에 BTS만의 언더독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입혀진 것이다.
'언더독'의 사전적 의미는 '약점이 많아 패배가 예상되는 존재'다. 그런데 여기에 열정과 의지로 역경을 이겨내는 스토리가 담기면 '언더독'은 사람들에게 강한 공감과 긍정효과를 주게 된다. BTS가 태생적으로 가지게 된 언더독 스토리를 가장 먼저 알아준 것은 국내 팬들이 아니라 미국의 팬들이었다. 한국에서는 2015년에야 <I NEED U>로 음악방송 첫 1위를 차지했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2014년 KCON(케이팝 콘서트)에서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묻혔던 2014년 앨범 <SKOOL LUV AFFAIR>는 빌보드 월드앨범 차트 3위에까지 올라가는 등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미미했던 데뷔 초기 BTS가 미국에서 팬덤을 만들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BTS 연구자 이지행은 바로 BTS 언더독 스토리를 꼽는다. “중소 기획사 출신의 주목받지 못한 출발, 유난히 악의적인 루머와 공격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서로를 의지한 채 꿋꿋이 버티며 오직 음악으로 대답해 온 이들의 모습은 유독 언더독의 성공 신화에 환호하는 서양인들, 그중에서도 미국인들의 구미에 더없이 들어맞는 주인공이었다. 더불어 이들의 언더독 정체성은 미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취급받는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들에게는 일종의 동일시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맨 바닥에서 여기까지 기어 올라온' 방탄에게 스스로의 모습을 투사하며, 차별적 사회 분위기 속에 놓인 자신도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 자기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이지행, <BTS와 아미컬쳐>) 아미는 BTS가 가진 ‘언더독’으로서의 설움, 그들의 성장과 고뇌 그리고 그들의 환희를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결속력을 만들 수 있었다.(김영대, <BTS:THE REVIEW>).
#팬들의 참여로 강화되고 확장되는 스토리
BTS 언더독 스토리가 BTS의 초기 팬덤에 불을 붙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팬덤이 커지고 정상급 뮤지션으로서 입지가 다져진 2017년 이후에는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근거로 스토리를 확장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바로 트랜스 미디어 전략이다. 홍석경에 따르면 “트랜스미디어란 콘텐츠가 하나의 매체에 다 담기지 않고 미디어의 경계를 넘어 다른 미디어 공간으로 확장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트랜스미디어 전략은 “여러 미디어를 가로질러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하기 위해서 이야기의 주요 요소를 여러 미디어 플랫폼에 유통해서 수용자들이 흩어져 있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도록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수용자와 텍스트가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게” 하는 전략을 의미한다(홍석경, <BTS:길 위에서>, 2020)
쉽게 말하면 스토리를 구성하는 여러 텍스트들을 파편으로 쪼개 ‘떡밥’이라는 이름으로, 뮤직 비디오, 앨범 자켓, SNS 채널 등의 주요 접점에 팬들의 놀잇감으로 뿌려 놓는다. 팬들에게 던져진 떡밥은 곧장 2차 콘텐츠의 생산으로 연결된다. 이렇게 여러 미디어와 플랫폼에서 동시다발적인 팬들의 참여를 통해 확장 변형된 스토리는 팬들의 뇌리에 강력한 스토리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참고자료>
[김유나의 Digital Insight] 콘텐츠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우주 토마토, 합격!" 하인즈, 화성 에디션 케첩 제조
이지행(2019), <BTS와 아미컬쳐>
김영대(2020), <BTS:THE REVIEW>
홍석경(2020), <BTS: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