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AI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얼마 전 봉사를 위해 찾은 복지관에서 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께서도 ChatGPT의 존재에 대해선 알고 계시더군요. AI는 이제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AI가 적용된 서비스/제품들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ChatGPT는 매달 방문자수가 18억 이상으로 추정되며, AI를 활용한 어플이 연달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네이버 스노우는 AI 필터 서비스 도입 15일 만에 사용자가 20만 명 증가했습니다. 유사한 기능을 앞서 선보인 렌사AI는 출시 5일 만에 4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습니다. 그외에도 AI의 영향력을 보이는 사례는 무수히 많습니다.

AI의 발전을 시간 역순으로 쭉 훑다보니, 비교가 되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블록체인입니다. 블록체인은 메타버스를 실현하는 기술로 주목받았습니다. 메타버스는 확정된 미래로 취급 받으며 관련 주식, 기술에 대한 주목도를 급성장 시켰습니다. 블록체인은 그중에서도 핵심이었던 것이죠.

덩달아 NFT, 디파이 등 크립토가 기존 금융시장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디즈니, 코카콜라, 스타벅스, 나이키 등 비IT 기업들도 NFT에 큰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이 모든 게 길어야 2020년 하반기~2022년 상반기, 약 1년 반 동안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부터 테라·루나, FTX 파산, 바이낸스-코인베이스 기소 등 블록체인을 핵심으로 한 Web3 기업이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블록체인 산업은 이제 (적어도 대중에게는) 신뢰를 잃었습니다. 동시에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도 팍 식었습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그래서 메타버스, 블록체인이 뭔데?’라는 의문을 해결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후 약 1년 동안 AI는 빠르게 블록체인과 메타버스를 대신해 '대세'가 됐습니다. 이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분석이 곳곳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선 그러한 분석을 토대로 ‘블록체인은 안 되고, AI는 된 이유가 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통점: 탈중앙화, 파급력

블록체인과 생성AI는 모두 일종의 Web3로, 탈중앙화와 독자성을 추구합니다. 모델에서 플랫폼이 파생되고, 사용자가 자신의 콘텐츠에 소유권을 가집니다. 기존에는 사용자의 데이터나 콘텐츠가 구글이나 네이버처럼 중앙화된 플랫폼이 소유하고 관리했다면 Web3에선 각 사용자가 관리와 소유의 권리를 가지는 셈입니다.

Web3는 ‘집단광기‘? 혹은 ‘새로운 혁신’?
6월2일 Vice의 Tech섹션이 실린 ‘웹3 전환의 흐름이 사람들을 다치게 할 것이다’는 글이 화제입니다. 웹3에 대한 비판론을 묶은 이 글에 대한 반향이 제법 큰 셈인데요. 실제로 요즘 여러 매체와 주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대체로 유보적 인식이 많아 보입니다. “Web 3.0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 방향은 맞는 것도 같지만 당장 체감할

Web3가 블록체인 등 탈중앙화 서비스를 칭하는 용어인 만큼 블록체인과 Web3, 탈중앙화는 서로 떼놓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블록체인은 각자에게 일종의 보안과 소유권을 부여함으로써 탈중앙화를 실현합니다. 사용자가 만들거나 소유한 데이터에도 그 데이터의 출처나 원본을 새겨넣습니다. 모든 데이터와 사용자의 행위를 중앙화된 플랫폼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분명히 보여줍니다. 상품의 제조년월일, 유통기한, 가격, 거래 경로 등이 모두 투명하게 공개됨과 비슷합니다.

생성AI 역시 탈중앙화됐습니다. 다만 생성AI의 탈중앙화는 공방 같은데요. 주인장이 재료, 공구, 제조법을 모두 준비해놓은 공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 각자의 물건을 만들어 가져가는 셈입니다. 만들고자 하는 글, 코드, 이미지, 또는 사운드를 생성AI에게 입력하면 저절로 변환이 됩니다. 일부 전문가 혹은 플랫폼에게 집중됐던 ‘콘텐츠 생성 기술’을 사용자 모두가 쥐게 됐습니다.

덕분에 콘텐츠는 더이상 중앙화되고 특정된 출처를 가지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콘텐츠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블록체인, AI 모두 결과적으로 자신들을 중심으로하는 특정한 영역을 만듭니다. NFT, 혹은 이미지의 소유권은 각 사용자에게 있다지만 이들이 가치를 가지려면 특정한 플랫폼을 필요로 합니다. 엔씨소프트 ‘리니지’ 속 자산이 블리자드 게임 ‘디아블로’에서 쓰이진 않듯이 각 NFT를 만들고 또 거래하기 위한 플랫폼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생태계 구축은 단지 생성된 콘텐츠를 대상으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블록체인과 AI는 모두 각 기술을 토대로 한 수많은 파생품을 만들어냅니다.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한 1세대 블록체인을 보완한 2세대 블록체인(이더리움 등)이 나오고, 거기서 더 나아가 온 체인 거버넌스를 구현하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보완한 3세대 블록체인이 나오는 등 블록체인 기술은 하나의 기술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생성AI 역시 서두에서 언급한 네이버 스노우, 렌사AI처럼 AI를 활용한 앱이 등장하고, 점차 AI가 생성할 수 있는 분야가 넓어지는 등 AI를 축으로 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유사점은 아마 트렌드가 블록체인에서 AI로 전환되는 속도를 높였을 것입니다. 블록체인이 추구하던 탈중앙화가 생성AI로도 가능했습니다. 블록체인이 자본 시장을 움직였던 주요 이유 중 하나였던 기술의 파급력과 그로 인해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구축된단 점 역시 AI가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AI는 빠르게 블록체인이 받는 관심을 흡수할 수 있던 게 아닌가 합니다.

AI, 더 쉽고 더 재밌다

AI가 블록체인과 달리 놀라운 속도로 대중을 설득하고, 매료시킨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가성비와 지향점입니다. 블록체인의 활용은 보안성과 소유권에 집중됐습니다. 문제는 이 보안과 소유권이 왜 필요한지, 또 얼마나 유용한지 사람들에게 설득되지 않았단 것입니다. 자동차의 예를 들면 최초의 자동차는 이미 18세기에 개발됐지만 실용성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분명 뭔가 멋져보이긴 하지만 너무 어렵고 비싼 기술이었던 것이죠. 그 어려움과 비싼 값을 감수했을 때 돌아오는 기대 효용도 높지 않았습니다. 포드나 캐딜락의 등장으로 자동차의 가성비와 효용을 쉽게 체감하게 되기 전까지 자동차는 소수에게나 가치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NFT나 메타버스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 해도, 대중이 그 뛰어남을 체감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애초에 보안과 소유라는 블록체인의 지향점이 쉽게 체감되지 않는 무형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틱톡 등 소셜미디어도 생성AI를 활용하고, 유저들도 생성AI 체험을 즐깁니다.

이와 달리 생성AI의 지향점은 간단하고 재밌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입니다. ChatGPT의 등장으로 이 ‘콘텐츠’라는 지향점을 누구나 쉽고 빠르게 체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미드저니나 Dall E는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미디어를 통해 그 성능의 우수성이 전파되기도 쉽습니다. 굳이 생성AI의 원리나 가치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단 한 장의 사진만 보여주면 누구나 생성AI의 우수성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는 생성AI의 단점을 가려주기도 합니다. 생성AI는 할루시네이션이나 정보 노출 등 꽤 문제가 많지만, 일단 재밌기 때문에 그런 단점을 겪어도 다시 사용해보게 됩니다.

이런 경향은 생성AI로부터 파생된 ‘콘텐츠 전쟁’에서도 나타나는데요. 일단 사용자가 쉽고, 빠르고, 재밌게 느끼는 콘텐츠 혹은 서비스가 살아남는 사회적 풍토가 생성AI와 블록체인의 차이점에서도 나타난 듯 합니다.

반항적인 블록체인, 온순한 생성AI

둘째는 기성에 대한 저항 정도입니다. 블록체인은 가상화폐라는, 아주 커다란 논쟁거리를 던졌습니다. 가상화폐를 제도권의 화폐 혹은 금융상품으로 인정해야 하는가는 아직도 논란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부딪힌 건 단순히 화폐를 넘어 시장과 정부라는 커다란 체제입니다. 때문에 블록체인은 ‘화폐 논쟁’에 휘말려 각종 규제와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국내에서도 2017년부터 코인 관련 규제가 쏟아졌고, 블록체인은 코인에 묶여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처럼 현재까지 블록체인이 만든 작품 중 가장 핫한 것인 가상화폐의 반체제 성격으로 인해 블록체인은 혁신성보다 위험성이 두드러지게 됐습니다.

생성AI는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최근 AI 규제 논의가 샘 알트만, EU 등 곳곳에서 나오고 있고 발화자에 따라 규제의 강도나 범위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AI는 ‘혁신’으로 존중받고 있습니다. 모두 AI가 위험하다고 인식하지만 동시에 AI의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합니다. 주요 규제안 중 가장 까다롭다는 EU의 규제안도 마찬가지입니다.

  • AI가 만든 콘텐츠는 ‘AI가 생성함’ 문구를 표시
  • 개발사는 AI가 내린 판단에 대한 설명을 제시
  • AI 사용 및 개발에 대한 자체 가이드라인 제시
  • 감정 및 얼굴 인식 기능 제한
  • ‘위험’ 단계로 분류된 AI는 AI 개발과 사용에 투입된 데이터 출처를 모두 공개

사용이나 개발 자체에 규제가 들어갔던 블록체인에 비하면 매우 순한 규제입니다.

규제가 강하다면 (왼쪽) 일종의 사인, 코사인 그래프처럼 기술의 발전과 퇴보가 반복하겠지만 규제가 약하면 (오른쪽) 거침없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생성AI는 기존 사회를 뒤집는다기보다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가짜뉴스 배포 등은 분명 위험하지만 ‘화폐의 정의’를 바꾸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비하면 아주 순합니다. 정리하자면 블록체인은 규제로 인해 마치 주가 그래프처럼 발전과 퇴보를 오가느라 발전 속도가 더뎠지만, 생성AI는 강력한 규제를 피해 우상향 곡선을 그리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샘 알트만과 ‘월드코인’: AI와 블록체인이 만날 때

하지만 블록체인과 AI가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는 건 아닙니다. 두 기술 사이의 연관성, 혹은 AI 열풍이 워낙 뜨겁기 때문에라도 AI와 블록체인은 서로 접점을 가집니다.

우선 둘은 탈중앙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기 때문에 함께 활용되기 쉽습니다. 콘텐츠 거래용 암호화폐 트론(Tron)의 개발자 저스틴 선(Justin Sun)은 AI 개발 펀드를 출시하면서 “블록체인은 ChatGPT 등 AI의 안전성과 접근성을 높여줄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블록체인이 AI의 단점인 데이터의 투명성, 보안을 보완할 수 있단 것입니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AI의 만남이 진정한 성과를 만들어낼 지는 의문입니다. 블록체인-AI 프로젝트 중 눈에 띄는 건 역시 샘 알트만의 ‘월드코인(WorldCoin)’입니다. 월드코인은 홍채인식을 통해 개인정보 없이도 본인인증을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토큰’입니다. 월드코인은 샘 알트만을 내세워 s16z, 코인베이스벤처스, 디지털커런시그룹 등 벤처 캐피털로부터 1억 1500만 달러의 투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월드코인은 ‘보편적 기본소득’을 표방합니다. 인도에선 ‘홍채를 등록하기만 하면 코인을 준다’라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월드코인은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 받는 이들에게 자기 몫을 챙겨 준다는 박애주의적인 목표를 가집니다.

그러나 월드코인은 제대로 된 성과는커녕 논란만 만들었습니다. 지적받는 지점 중 하나는 자금 조달 과정에서 구체적인 비전이나 계획도 없이 샘 알트만이란 유명인의 명성에 기댔단 것입니다. 애초에 투자자들의 비합리성을 노린 자금 조달 방식입니다.

개인정보와 윤리성 문제도 지적받고 있습니다. 월드코인은 기본적으로 두 요소로 구성되는데요. ‘오브(Orb)’라는 사용자 신원 확인에 쓰이는 홍채 인식 디바이스와 ‘월드코인 토큰’이라는 ‘보편적 기본소득(UBI)’ 목적의 가상화폐입니다. 논란이 되는 점은 월드코인이 기본소득 제공이란 유인책을 통해 개인정보, 특히 저소득층의 개인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수집했단 것입니다. 당초 ‘홍채만 있으면 된다’는 약속과 다르게 GDPR(일반정보보호규정)을 어기고 홍채를 통해 사용자의 다른 개인정보들에도 접근한 것입니다. 또한 월드코인 토큰은 아직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고, 어떻게 사용될지 구체적인 계획도 나온 바가 없습니다. 월드코인의 행보에 따라 토큰은 라면 한 봉지 만큼의 가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월드코인이 설명하는 오브의 인센티브 모델과 프로덕션 및 할당 방법 ⓒWorldcoin

만일 위 사항들에 대해 월드코인이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개인정보 없이’, ‘금융시장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월드코인의 기본 목적 뒤에 음흉한 계략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샘 알트만은 AI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월드코인을 통해 모은다.’는 식의 비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때부턴 AI의 데이터 수집에 대한 규제가 더 광범위하고 강하게 시행될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블록체인이 가상화폐로 인해 규제 대상이 된 것처럼, 월드코인으로 인해 ‘블록체인과 AI의 만남’이 모두 위험하고 의심스러운 행위로 취급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월드코인 외에 ‘탈중앙화, 금융 평등, 정보의 투명성, 뛰어난 보안’을 추구하는 블록체인 혹은 AI 기술은 개발 중입니다. 일례로 일부 개발사들은 블록체인으로 정보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가중치를 두는 방식으로 AI 검색엔진의 문제점중 하나인 SEO 포이즈닝(검색 결과 상위에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등의 위험 사이트를 노출시키는 것)을 해결하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이런 시도들이 몇몇 나쁜 전례로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의심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몇몇 나쁜 사례를 접하고 이를 일반화하거나, 지나치게 강한 규제를 가하는 건 피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선 일차적으론 기업들이 신중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해야겠지만, 이차적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사용하는 자들이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블록체인과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참고

Web3는 '집단광기'? 혹은 '새로운 혁신'? (thecore.media)

Generative Tech Market Map and 5-Layer Tech Stack (nfx.com)

[MWC2023] 블록체인∙웹3.0 저물고 생성 AI가 떠오른 이유는? - Byline Network

AI 내세운 월드코인의 기만과 착취 < 코인데스크US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코인데스크코리아 (coindesk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