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산층·중고 시장…명품업계를 압박하는 세 가지 변화
🇨🇳 꺼져가는 중국 엔진
- 루이비통이나 프라다 제품이 갑자기 자라·H&M보다 30% 싸진다면 매장 진열대는 순식간에 비어버릴 겁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서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루이비통을 보유한 LVMH와 프라다 주식이 패스트패션 업체보다 훨씬 싼 가격에 거래되는데도 투자자들이 몰려들지 않고 있습니다.
- LVMH의 예상 이익 대비 주가 수준은 현재 자라의 모회사 인디텍스보다 약 30% 낮습니다. 이유는 단순한 경기침체 우려가 아닙니다. 글로벌 명품 판매가 최근 3년 동안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투자자들은 명품산업의 전성기 자체가 끝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 지난 20년 명품산업을 키운 가장 강력한 엔진은 중국이었습니다. 지난 30년간 글로벌 명품산업 성장분의 절반 이상을 중국 소비자가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중국 부동산 가격은 2021년 말 고점보다 약 40% 떨어졌습니다. 베이징 같은 1선 도시에서는 가격이 안정되고 있지만 인구의 90%가 거주하는 나머지 지역에서는 여전히 하락하고 있습니다.
- 중국 가계는 저축까지 꺼내 쓰고 있지만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소매판매 증가율은 5개월 연속 1%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저축을 명품에 쓰는 게 아니라 생활비를 충당하는 데 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으로 ‘내가 가난해졌다’고 느끼는 자산효과까지 겹치면서 명품 소비가 위축되고 있는 겁니다.
💸 중산층도 지갑을 닫다
- 두 번째 성장엔진은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이었습니다. 매일 명품을 사지는 않지만 1년에 한 번쯤 큰맘 먹고 가방이나 신발을 사는 소비자들이 명품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여유가 줄고 있습니다.
- 에너지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지고, 국채금리가 오르면서 주택이나 자동차를 살 때 부담해야 하는 이자도 늘었습니다. 생활비와 금융비용을 내고 나면 4000달러짜리 가방에 쓸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 이 변화는 특히 루이비통 같은 대형 브랜드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루이비통 매출의 절반 이상은 한 사람당 지출액은 크지 않지만 고객 수가 많은 중산층 소비자에게서 나옵니다. 반대로 브루넬로 쿠치넬리처럼 원래부터 초부유층을 주 고객으로 삼은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충격이 작습니다.
💎 결국 남는 건 초부유층
- 명품업계가 점점 소수의 초부유층에 의존하게 되면서 브랜드 전략도 갈리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까르띠에를 보유한 리치몬트입니다. 리치몬트의 주가는 LVMH와 달리 인디텍스와 비슷한 수준의 이익배수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 까르띠에의 강점은 가격대가 넓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반지는 수백달러에 살 수 있지만 맞춤형 목걸이는 1000만달러 이상까지 올라갑니다. 중산층부터 세계 최상위 부자까지 동시에 고객으로 만들 수 있는 구조입니다. 부유층은 계속 소비하고 중산층은 압박받는 ‘K자형 경제’에서는 이런 고객 구성이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 중국 부유층까지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 정부는 올여름 자국민이 해외에 보유한 신탁에 20%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7월 중국 명품 쇼핑몰의 판매가 감소한 것도 고액 세금 부담을 예상한 부유층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신호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 중고 명품까지 경쟁자
- 10년 전에는 없었던 경쟁자도 생겼습니다. 중고 명품 시장입니다. 모건스탠리는 명품 브랜드들이 소비여력 감소뿐 아니라 리셀 플랫폼과의 경쟁에도 직면했다고 지적합니다. 미국 중고 명품 플랫폼 더리얼리얼의 2분기 매출은 전년보다 17% 증가했습니다.
- 소비자 입장에서는 새 명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느껴지면 선택지가 많아졌습니다. 같은 브랜드의 중고 제품을 사거나 아예 자라·H&M 같은 저렴한 브랜드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패스트패션 업체의 가치가 LVMH보다 높게 평가되는 데에는 명품 소비자의 이런 ‘트레이드다운’ 가능성도 반영돼 있습니다.
📊 이번엔 2016년과 다를까
- LVMH가 인디텍스보다 지금처럼 크게 할인돼 거래된 것은 2016년 이후 처음입니다. 당시에도 명품산업은 위기였습니다. 로고를 크게 박은 가방에 소비자들이 싫증을 냈고, 중국에서는 부를 과시하는 소비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 하지만 루이비통은 제품을 대대적으로 바꿨고 중국 명품 수요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는 미국 시장까지 적극적으로 공략했습니다. 2016년 초 LVMH 주식을 사서 5년간 보유한 투자자는 배당 재투자를 포함해 연평균 34%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 이번에도 주가가 싸진 만큼 같은 기회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게 되는데요. 투자자들이 주저하는 이유는 이번 문제가 제품 몇 개를 개선하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국 성장 둔화와 부동산 침체, 서구 중산층의 구매력 약화, 중고 명품 시장의 성장이라는 구조적인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 결국 명품 브랜드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습니다. 가격을 낮춰 다시 중산층을 끌어들이거나, 높은 가격을 유지하면서 더 작은 초부유층 시장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가격을 계속 올려도 고객이 따라오고 매출도 성장한다’는 명품산업의 오래된 공식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LVMH의 30% 할인은 단순한 ‘저평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https://www.wsj.com/business/retail/luxury-stocks-are-selling-at-fast-fashion-prices-691ae978?mod=finance_lead_po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