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배우가 한국의 문화예술을 빛낸 사람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배우에게 금관문화훈장이 수여된 건 처음이다, 윤여정씨는 2017년 은관문화훈장도 배우 최초로 받았었다. 윤여정씨가 은관문화훈장에 이어 금관문화훈장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바로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 최초일 뿐 아니라 자국어를 쓴 아시아 배우 중에서는 최초라고 한다. 윤여정씨는 수상 소감에서 “제가 오래 일해서, 열심히 일해서 나라에서 주시는 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히 받겠다”면서 “동료, 선배, 후배들도 앞으로 다 이런 상을 많이 받아야 한다. 제가 처음 받는 상이라 들었는데 저로 시작해서 많은 주위 분들도 같이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여정 배우가 수많은 동료, 선배, 후배 배우들을 제치고 한국의 문화예술을 빛냈다는 평가를 연이어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윤여정씨의 인생 궤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윤여정 배우는 1966년 TBC(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으로 사라진 한국 최초의 상업 방송사로 현재 JTBC가 그 명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공채 탤런트 3기(과거에는 방송사에서 배우들을 직원처럼 공채로 뽑았다)로 데뷔했다. MBC로 이적해서 1971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 주연을 맡아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다. 스타덤에 오른지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은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고, 조영남의 미국 유학 길에 동행하면서 약 10년 동안 공백기를 갖는다. 조영남과 이혼 후 1984년 배우 활동을 재개했지만 10년 공백을 가진 이혼한 여배우를 써주는 방송사나 영화사는 많지 않았다. 단역을 전전하다가 1992년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한국방송대상 여자 탤런트상을 수상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고 그 이후로 매년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 출연을 해왔다. 그러다 2019년 “미나리”로 전세계에서 연기상을 44개나 받으면서 배우로서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히 인정을 받게 된다.
# 배우 일에 대한 소명의식과 헌신(devotion)
배우로서도, 한 사람의 삶으로서도 순탄하지 않았던 궤적이다. 중간 중간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을 고비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윤여정 배우는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작은 배역이라도 최선을 다했다. 여기서 윤여정 배우가 지금처럼 인정받을 수 있었던 첫번째 비결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배우 일에 대한 소명 의식이다. 윤여정 배우가 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래 언급에 잘 드러나있다.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 배우가 편하면 보는 사람은 기분 나쁜 연기가 된다고, 한 신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
이 인터뷰는 1990년 연극 <위기의 여자> 공연 뒤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윤여정 배우는 데뷔 직후인 1971년에 2편, 그리고 1990~1991년 3편, 그리고 1997년 1편 등 총 다섯 편의 연극에 출연했는데, 배우로서 연기를 할 공간이 주어지지 않자 연극 무대를 택해서 자신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렇다면 윤여정 배우만 자신의 일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연기한 건 아니지 않냐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맞다. 인정받는 배우들은 모두 자기 일에 대한 소명 의식과 연기에 대한 몰입과 헌신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특히 윤여정 배우가 더 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소명의식이 두번째 비결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 “생계형” 배우라는 자기 서사(Story)
윤여정 배우는 자신의 인생 궤적을 반영해 “생계형 배우”라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솔직하게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2010년 임상수 감독의 <하녀> 개봉 뒤 <씨네21>과 인터뷰를 보면 그녀의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나는 생계형 연기자예요. 연기자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궁할 때예요. 배가 고프면 뭐든 매달릴 수밖에 없어요. 예술가도 배고플 때 그린 그림이 최고예요. 그래서 예술은 잔인한 거예요. 나는 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내 일생을 연기에 바쳤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러한 생계형 연기자라는 자기 서사는 이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했던 80,90년대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핸디캡이 될 수 밖에 없는 이혼한 여배우라는 편견을 극복하고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준 서사였다(먹고 살기 위해 연기를 해야 한다는 배우에게 박정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윤여정 배우는 자신을 “생계형 배우”로 규정함으로써 연기할 수 있는 무대를 확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자신을 다잡고 연기에 몰입하고 헌신할 수 있는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기 서사를 만들어내고 이를 솔직하게 드러냈던 것이 윤여정 배우를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만든 두 번째 비결이다.
#글로벌 시장을 향한 과감한 도전(Global Orientation)
마지막으로 세번째 비결은 글로벌 시장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했기 때문이다. 윤여정배우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대표 배우로 만들어준 결정적 계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영화 <미나리>다. 윤여정 배우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미나리 출연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나리> 는 시나리오가 영어로 되어 있어서 골이 아팠다. 하지만 순수하고,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진짜 이야기였다. 감독을 만나보니 그 진심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독립영화라 예산이 없어서 촬영지인 미국 털사까지 오가는 비행기를 이코노미로 해준다고 하더라. 70이 넘은 나이에 이코노미를 타고 미국까지 가는 건 너무 힘들어서 제 돈으로 미국으로 갔다"라며 큰 제작비를 들이지 않은 작품에 출연료도 적게 받으며 참여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미나리>는 순제작비가 200만 달러(약 23억원)에 불과한 저예산 독립 영화였다. 이는 2019년 한국 상업 영화의 평균 순제작비 76.5억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규모였다.
그런데 윤여정 배우는 과감하게 출연을 결정한다. 그것도 자기 돈을 써가면서. 윤여정 배우에게 글로벌 영화 시장에 도전해보겠다는 지향점이 없었다면 하기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 과감한 도전이 윤여정 배우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선물했고, 전세계에 한국의 문화예술을 빛낸 대표 배우로 만들어주었다.
<필자소개> 임성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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